한미 통상마찰 불씨 된 쿠팡
美정치인들 연일 옹호 발언
한국 시장에 기반 둔 기업
국민 신뢰 잃지 않는게 중요
美정치인들 연일 옹호 발언
한국 시장에 기반 둔 기업
국민 신뢰 잃지 않는게 중요
미국 최대 유통기업 월마트는 독일에서 쓴맛을 봤다. 이 회사는 1997년에 유럽 진출 교두보로 독일을 택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했던 방식대로 초저가와 효율성을 추구했다. 하지만 가격 덤핑을 제한하는 공정경쟁 제도와 강한 노동조합 등 독일 정서와 정면 충돌하면서 내내 갈등을 빚었다.
월마트는 이런 혼선을 사회적 설득이 아니라 법적 대응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독일식 규제는 외국 기업에 불리하며 차별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반면 독일 사법부와 당국은 월마트만을 위한 규제를 한 적이 없고 동일 규칙이 자국 기업에도 적용되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 월마트는 더 버티지 못하고 2006년 독일 철수를 선언했다.
쿠팡이 월마트의 전철을 밟을지는 자신들의 선택에 달렸다. 쿠팡 입장에선 억울할 것이다. 국회의 망신주기식 청문회와 정부의 전방위 조사가 너무 가혹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쿠팡은 한국 이커머스 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통 공룡이다. 고객정보 유출 건 외에도 수수료 논란, 노동 문제 등 그동안 누적된 불만을 감안한다면 쿠팡은 보다 겸허한 자세로 대응해야 할 처지다.
그럼에도 쿠팡의 태도는 한국 정서를 달래는 방향과 거리가 멀었다. 국회가 김범석 쿠팡 의장의 출석을 수차례 요구했지만 응하지 않았고, 연석 청문회 때 해럴드 로저스 대표가 보여준 고자세는 '한국을 만만하게 본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미국 인사들의 잇단 쿠팡 옹호 발언은 당혹감을 더했다. 한국 정부가 쿠팡을 불공정하게 대우하면 후과가 있을 것이라는 미 정치인의 경고는 아찔했다.
급기야 쿠팡 미국 주주들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 의향서와 함께 미국 무역대표부(USTR) 직접 조사를 요청한 행동은 또 다른 악재다. 지난 23일에는 JD 밴스 부통령이 김민석 총리에게 쿠팡 사건을 언급했다. 가뜩이나 트럼프 정부가 관세를 무기 삼아 한국의 대미 투자를 연일 압박하는 상황에서 쿠팡 이슈가 한미 통상 갈등을 촉발하는 화약고로 부상한 셈이다.
갈수록 꼬이는 이 흐름 속에서 간과해선 안 될 핵심은 한국 정부와 쿠팡 양측이 공멸하는 치킨 게임을 피해야 한다는 점이다. ISDS 의향서는 쿠팡 해외 투자자가 제기했고, 쿠팡이 이를 공모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국가 분쟁으로 비화하기 전에 김범석 의장이 직접 주주들을 다독이고 인내를 호소해야 한다. '쿠팡이 뒤에서 부추긴다'는 의혹을 차단해야 한국 기반을 지킬 수 있다.
만일 ISDS가 현실화하고 미 통상당국 조사가 개시되면 한국 정부뿐 아니라 쿠팡이 감수해야 할 부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한국 정부가 입게 될 충격은 국가 경제를 위축시키고 고스란히 국민 피해로 전가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금까지의 '탈팡' 정서와는 차원이 다른 집단 분노에 직면할 공산이 크다. 한국 소비자들이 로켓배송을 포기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소비자의 신뢰를 잃은 기업이 설 자리는 없다.
정부도 지금 벌이는 합동 조사가 법과 원칙에 따른 프로세스라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차별적 처사로 여길 사안이 없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양패구상을 막을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
한 가지 더. 누가 쿠팡의 몰락을 원하겠는가. 형식상 미국 기업이라고는 해도 쿠팡은 매출과 고용 측면에서 한국에 뿌리를 깊이 두고 있다. 쿠팡 투자자들이 지적한 대로 한국 정부가 쿠팡의 기업 능력을 제거해 중국 경쟁업체들을 이롭게 할 리는 만무하다.
[황인혁 국차장 겸 디지털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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