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신의 조상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나는 일찍 돌아가신 조부의 이름과 일화 한 두개 정도는 들어서 안다. 그러나 증조부의 이름이나 삶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다. 고관대작이 아닌 필부필부였을테니 특별히 전해 내려올 이야기도 없었을 것이다. 보통 사람들에게도 증조부의 삶은 아득한 전설이자 까마득한 역사에 가깝지 않을까.
최근 배우 하영이 난데없이 ‘증조부 논란’에 휩싸였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4대째 의사 집안”이라며 “증조할아버지가 고종 황제를 진료했다”고 소개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후 증조부가 일제강점기 친일 행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비판이 쏟아졌다. 친일단체에 가입했고, 일제에 의해 일본식 생활양식을 받아들인 모범 사례로 소개됐다는 사실까지 ‘파묘’됐다. 급기야 온라인에는 “차라리 친일파 금수저 집안이 부럽다”는 기이한 자조까지 등장하며 논란이 번졌다.
증조부의 친일 행적은 역사적 사실대로 평가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그 책임을 100년 가까이 지난 뒤 증손녀에게 묻는 것이 타당할까. 하영이 증조부의 친일 행적을 알고도 의도적으로 감췄다고 볼 근거도 없다.
알고 있었다면 굳이 방송에서 증조부 이야기를 꺼냈을 리가 없다. 증조부의 이름조차 생소한 수많은 현대인들의 현실을 떠올리면, 하영 역시 ‘고종 황제를 진료했던 가문의 자랑스러운 의사’ 정도로 전해 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집안 내력을 자랑하려다가 곤혹을 치르게 된 것은 본인이 감당해야할 몫이다.
하지만 증조부의 과거 행적을 이유로 후손에게 친일의 굴레를 씌워 돌을 던진다면 과도한 ‘연좌제’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광복을 맞이한 지 8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 대부분은 일제강점기의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니다. 과거를 잊지않고, 역사를 정확히 기록하고 평가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역사의 기억이 오늘을 사는 후손에 대한 ‘혈통 검증’으로 변질돼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은 ‘조상이 누구였느냐’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느냐’여야 한다. 일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과거사는 과거사대로 직시하고 따질 것은 따지되, 오늘의 한일 관계까지 100년 전의 적대감 속에 가둬둘 이유는 없다. 역사를 잊지 않는 것과 역사에 붙잡혀 사는 것은 다르다. 증조부의 행적까지 ‘파묘’해 증손녀를 심판하는 지금의 풍경은 우리가 그 경계를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묻게 한다.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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