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로드맵 발표가 다음 달로 예상되면서 한국산업은행·IBK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의 지방 이전 가능성을 둘러싼 논란이 점화되고 있다. 3대 국책은행 노동조합은 정부의 구체적인 이전안이 나오기 전인 지난 11일 사상 처음으로 공동 집회를 열고 반대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금융노조가 우려하는 문제 중 하나는 핵심 인력의 이탈이다. 본점이 지방으로 옮겨질 경우 서울에 생활 기반을 둔 직원들이 가족과 함께 이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직장을 계속 다닐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실제 국책은행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전 자체보다 가족의 생활 기반을 어떻게 유지할지가 더 큰 고민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책은행에 근무하는 A씨는 지난 13일 기자와 만나 “만약 회사가 이전한다고 했을 때 같이 내려가는 방안은 현재로서는 생각하고 있지 않다”며 “배우자도 직장을 다니고 있고 서울에 집이 있는데 현 부동산 제도 아래 지방 전세살이가 쉽지 않다. 내가 이직하는 게 가장 쉬운 길”이라고 말했다.
같은 은행에 근무하는 B씨는 “지방으로 내려가는 것 자체가 싫은 게 아니다. 생활 기반이 함께 움직이는 문제”라며 “회사가 직원 개인에게 알아서 하라고 하면 이직자가 대거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내려간다고 하면 어느 정도의 지원책이 나오는지 일단 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산업은행 노조에서도 직원들의 가족 문제를 주요 변수로 꼽고 있다. 이재익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한국산업은행지부 부위원장은 “산업은행의 경우 전체 직원 중 절반 이상인 60% 가까이가 기혼 직원이고 대부분 맞벌이”라면서 “특히 배우자가 직장을 다니고 있다면 이사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이주율이 낮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실제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 논의가 본격화됐던 지난 2022년부터 2024년 상반기까지 약 2년 반 동안 인력 이탈이 다수 이어졌다. 산업은행 노조에 따르면 해당 기간 정년퇴직 등을 제외한 자발적 퇴사자는 약 250명에 달했는데, 노조 조합원 약 2200명을 기준으로 하면 10%를 웃도는 규모다.
벤처투자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전문 업무 경력을 가진 직원들의 퇴사가 많았다는 게 노조 측의 설명이다.
다만 지방 이전이 곧바로 대규모 인력 이탈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1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당시 상당수 직원이 실제 이전 지역에 정착했기 때문이다.
정희용 국민의힘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1차 공공기관 이전으로 지방으로 이동한 인원은 올해 6월 기준 4만8128명으로, 이 중 해당 지역으로 실제 거주지를 옮긴 인원은 3만4214명을 기록해 전체의 71.1%였다.
특히 부산의 직원 이주율은 86.4%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제주 82.4%, 전북 77.8%, 광주·전남 76.3% 등이 뒤를 이었다. 가족 동반 이주율도 부산이 81.4%로 가장 높았으며 제주 73.0%, 전북 72.1%, 광주·전남 65.0% 수준이었다.
다만 이 같은 수치를 국책은행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책은행은 일반 공공기관과 달리 기업과 금융회사, 증권사, 회계법인, 법무법인, 금융당국 등 다양한 금융시장 참여자들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의 경우 대기업 금융과 기업 구조조정, 투자은행(IB) 업무 등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서울 금융시장과의 접점이 많다. 기업은행은 중소·중견기업 금융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한국수출입은행은 수출금융과 해외사업 금융 등을 담당한다. 세 기관 모두 기업의 자금 조달과 밀접한 업무를 수행하는 만큼 본점의 위치가 직원들의 생활뿐 아니라 업무방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오피스 시장 관계자는 “앞서 공공기관 직원들이 지방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지역별로 차이를 보인 것을 단순히 이전 기관의 규모나 직원 구성만으로 봐서는 안 된다”며 “주거와 교육, 의료, 교통, 문화 등 정주여건이 고루 변수로 작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금융시장과 정책금융기관 사이의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는 업무환경뿐 아니라 직원이 실제 생활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과 정착 지원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금융노조는 지난 12일 주 4.5일제와 임금, 지방 이전 등을 안건으로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했으며 96%의 찬성률로 가결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부위원장은 “금융노조 43개 지부 전체가 참여한 투표인 만큼 우선 산별교섭과 대표교섭 등을 지켜볼 것”이라며 “임금이나 주 4.5일제, 본점 이전 관련 협의에서 유의미한 진전이 없다면 파업으로도 갈 수 있지만, 일단 정부의 추가 발표가 나오면 지부 차원의 별도 대응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매일경제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