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바로가기
나만의 AI 비서 마이에이전트 마이에이전트
정치 > 외교·국방·남북

나를 넘어 타인의 행복도 배려 … 백범이 꿈꿨던 '아름다운 나라'

김구 손녀 김미 백범김구기념관장
아버지 김신, 스물다섯살에야
김구와 마주앉아 밥 처음 먹어
父子를 관통한 감정은 그리움
편지 오면 우표 핥아보기까지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닌
꽃을 심는 자유 강조했던 김구
헌신의 방식도 시대 따라 변해
다른 사람과 나누는 걸로 충분
김미 백범김구기념관장이 기념관 내 상설전시관에 마련된 김구 선생의 흉상 옆에 서서 과거 가족들과의 에피소드를 회상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한주형 기자
김미 백범김구기념관장이 기념관 내 상설전시관에 마련된 김구 선생의 흉상 옆에 서서 과거 가족들과의 에피소드를 회상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한주형 기자
스물다섯 살이 돼서야 처음으로 아버지와 마주 앉아 밥을 먹은 아들이 있다. 아버지의 얼굴을 처음 본 것조차 열댓 살 무렵이었다. 할머니와 살아가던 어느 날, 한 풍채 좋은 남자가 집에 찾아오자 놀란 할머니는 "어서 절을 하라"고 말씀하셨다. 영문도 모른 채 처음 아버지께 올린 절이었다. 아버지는 망명 생활 중 목숨을 걸고 둘째 아들과 어머니를 보러 왔었다. 조국에 일생을 바친 백범(白凡) 김구 선생과 그의 아들 김신 제6대 공군참모총장의 이야기다. 매일경제신문은 제81주년 광복절과 김구 탄생 150주년을 맞아 지난 12일 김구 선생의 손녀이자 김신 장군의 딸인 김미 백범김구기념관장과 서울 용산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버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서로 깊이 그리워하면서도 그 마음을 마음껏 표현할 수 없던 부자(父子)의 모습입니다." 김 관장이 기억하고 전해 들은 부자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감정은 '그리움'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님은 일제의 감시를 피해 할아버님의 편지가 오면 혹시 우표에 아버지의 흔적이 남아 있을까 싶어 냄새를 맡고 조심스럽게 핥아 보기까지 하면서 그리움을 달래셨다고 한다"고 회상했다.

김구 선생이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백범일지'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김 관장은 "할아버님은 독립운동을 하며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두 아들에게 자신의 삶을 전해주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하셨다"며 "백범일지 상권을 유서 대신 썼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마음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래서 저에게 백범일지는 한 독립운동가의 자서전인 동시에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남긴 긴 편지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그러나 김구 선생에게 가족보다 앞선 것은 나라였다. 김구 선생은 나라가 있어야 가족도, 국민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라를 되찾는 일을 최우선에 뒀다고 김 관장은 설명했다. 그는 "광복이 됐을 때도 할아버님은 아들을 곁에 두기보다 비행 훈련을 계속하도록 하셨다"며 "새 나라에는 전문성을 갖춘 인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2일 김미 백범김구기념관장이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며 로비에 있는 김구 선생 동상 앞에서 취재진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주형 기자
12일 김미 백범김구기념관장이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매일경제와 인터뷰하며 로비에 있는 김구 선생 동상 앞에서 취재진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한주형 기자
김구 선생과 김신 장군, 나아가 김미 관장 등 '김구 패밀리'는 왜 대를 이어 사회를 위한 삶을 택했을까. 김 관장은 "가족 누구도 '국가에 봉사하라'고 특별히 가르친 적이 없다"며 "그러나 증조할머님과 할아버님, 아버님께서 살아오신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배웠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자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김 관장은 시대가 달라진 만큼 국가와 사회를 위한 '헌신'의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고 봤다. 김구 선생이 살던 시대의 헌신이 독립을 위해 자신의 삶과 가족과의 시간까지 뒤로 미루는 일이었다면, 오늘날에는 각자가 누리는 자유와 능력을 자신만을 위해 쓰지 않고 타인과 사회를 위해 나누는 것도 그 정신을 이어 가는 길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구 선생이 '나의 소원'에서 말한 자유도 이러한 김 관장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 김구 선생은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를 강조했다. 김 관장은 "자신의 자유를 자신만을 위해 쓰는 게 아니라 좋은 것을 이웃과 나누고,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데 쓰라는 말씀"이라고 설명했다.

김 관장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강해지는 오늘날일수록 백범 정신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점차 개인주의로 갈 것이기 때문에 한 차원 높게, 조금 더 넓게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씀이 나의 소원에 담겨 있다"며 "남을 해치면서 누리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처럼 '책임에 기반한' 자유가 모여 만드는 사회가 백범이 꿈꾼 '아름다운 나라'였다.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에서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며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했다. 그는 문화의 힘이 자신을 행복하게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행복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김 관장은 오늘의 대한민국이 백범이 꿈꾼 '아름다운 나라'에 상당 부분 가까워졌다고 평가했다. 그는 "오늘날 대한민국이 문화의 힘으로 세계 무대의 중심에 선 모습을 할아버님은 자랑스러워하셨을 것"이라며 "반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분단과 우리 사회의 갈등은 매우 안타까워하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화의 힘을 세계인의 행복과 평화에 기여하는 데 쓰고, 우리 사회의 갈등을 포용과 대화로 풀어 갈 때 할아버님이 바라셨던 '아름다운 나라'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상준 기자]

추천질문
Powered by
다 읽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지금 바로 쉬운 해설 클릭!


핵심요약 쏙
AI 요약은 OpenAI의 최신 기술을 활용해 핵심 내용을 빠르고 정확하게 제공합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려면 기사 본문을 함께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스물다섯 살이 된 아들은 처음으로 아버지와 마주 앉아 밥을 먹었으며, 아버지와의 그리움이 깊은 가족 이야기로 이어진다.

김구 선생은 독립운동 중 자신의 삶을 남기기 위해 '백범일지'를 썼으며, 가족과의 시간을 희생했던 이유는 나라를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김미 관장은 오늘날의 헌신이 타인과 사회를 위해 자신의 자유와 능력을 나누는 것이며, 이런 정신이 백범이 꿈꾼 '아름다운 나라'를 이루는 길이라고 강조하였다.

AI 해설 기사
AI 해설은 뉴스의 풍부한 이해를 위한 콘텐츠로, 기사 본문과 표현에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정확한 내용은 기사 본문을 함께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매일경제 회원전용
서비스 입니다.
기존 회원은 로그인 해주시고,
아직 가입을 안 하셨다면,
무료 회원가입을 통해 서비스를 이용해주세요
무료 회원 가입
로그인

Shorts

  • MK_Shorts 재생
  • MK_Shorts 재생
  • MK_Shorts 재생
  • MK_Shorts 재생
  • MK_Shorts 재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