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위기 극복에 역할
반도체 대계 핵심도 원전
'새로운 산업국가' 가는길
탈원전 절연 선언이 첫발
반도체 대계 핵심도 원전
'새로운 산업국가' 가는길
탈원전 절연 선언이 첫발
한국 경제가 최근 몇 달간 조우한 드라마틱한 두 장면이다.
위기는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을 덮친 미·이란 전쟁이었다. 그리고 기회는 뒤이어 기적처럼 찾아온 반도체 초호황이다.
두 장면은 야누스의 얼굴처럼 연이어 나타났다.
첫째, 위기에 관해서다. 호르무즈 봉쇄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급 충격으로 규정했다. 브렌트유는 배럴당 118달러로 두 배 가까이 솟았다. 그런데 한국은 의외로 담담하게 지나갔다. 에어컨은 여전히 풀 가동됐고 도로는 주말마다 붐볐다.
1등 공신은 원자력이다.
한국의 발전원 비중은 대략 원전·석탄·가스·신재생이 3:3:3:1이다. '2024년 에너지 동향'에 따르면 원자력이 31.7%(188.8TWh)로 18년 만에 석탄을 제치고 최대 발전원에 올랐다. 에너지 취약국이 사상 최악의 공급 충격을 버텨내는 데 원자력이 한몫을 했다.
호들갑이 아니다. 다른 나라를 보면 실감이 난다. 호르무즈가 원유의 '병목'인 아시아 국가 중 인도네시아는 34조원의 예산을 책정해 보조금을 뿌리다 환율이 급등했다. 올 초 재정 우려로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와 피치가 신용등급을 '부정적'으로 강등한 데 이어 충격을 받았다. 필리핀, 태국도 에너지발 재정 충격이 컸다. 원전이 없는 나라들이다. 파키스탄 등은 하루 2~3시간씩 단전을 시행했다. 에너지 충격은 정권과 신용등급에 직격탄을 날린다.
둘째는 기회에 대해서다.
반도체 초호황은 기적과도 같은 기회다. 이를 이어가는 열쇠는 결국 안정적이고 저렴한 전력이다.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800조원 규모 호남 반도체 육성계획의 핵심도 원전이다. IEA는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2030년까지 지금의 두 배로 늘 것으로 본다. 원전 외엔 답이 없다.
지난달 17일 경북 영덕과 부산 기장이 각각 대형 원전 2기, 첫 상용 SMR 후보지로 확정됐다. 신규 용지 지정은 2011년 영덕 천지원전 지정 이후 15년 만이다. 그 천지원전이 바로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백지화됐던 자리다. 미신 같은 탈원전 구호에 15년을 돌아 제자리로 온 셈이다.
대가는 참혹했다.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추산, 탈원전 피해액은 2030년까지 최소 47조원. 원전산업 매출은 5년 만에 41.8% 증발했고 400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협력업체 상당수가 폐업했다. 한때 카이스트 원자력공학과 지원자가 0명이 됐다. 그런데도 탈원전을 밀어붙였던 이들이 사과하거나 반성했다는 얘기는 들은 바 없다.
'탈원전 5년'은 기회를 중국에 넘기고 대한민국을 자해한 사건이다. 거론조차 싫은 암흑기를 굳이 지금 복기하는 이유가 있다.
다시, 우리 미래가 원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내놓은 '반도체 대계'도 결국 원전에 달렸다.
과연 각오가 돼 있나. 기후에너지부 장관부터 머뭇거린다. 여전히 탈원전론자들 눈치를 보는 듯하다. 정부 계획을 성사시키려면 기업들은 수십조 원의 위험 감수 투자를 결단해야 한다. 정부가 탈원전에 한 발 걸치고 있다면, 기업이 위험 부담을 질 수 있나.
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곧 확정된다. 정부가 확고한 입장을 밝힐 기회다.
지난봄 에너지 위기도, 지금의 반도체 기회도 답은 원전뿐이다.
더구나 한국은 최고의 원전 기술 보유국이다. 최소한, 탈원전이라는 과학과 역사의 퇴행과 분명히 절연하는 약속은 나와야 한다. 그래야 청와대가 말한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산업국가'를 향한 첫걸음을 뗄 수 있다.
[김선걸 논설실장]

매일경제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