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고릴라를 응시하는
경이·애정·호기심의 눈
배려·절제의 웃음 '파하'
호모 사피엔스만 가능한 일
경이·애정·호기심의 눈
배려·절제의 웃음 '파하'
호모 사피엔스만 가능한 일
이달 8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는 애튼버러에 관한 2개 기사를 실었다. 하나는 4단 기사로 100세를 맞은 애튼버러의 업적을 반추하는 내용, 하나는 '애튼버러: 자연의 위대한 전달자'가 제목인 사설이다. 영국 신문은 우리와 스타일이 다르지만 생존 인물의 생일을 기념해 사설을 쓰는 것은 어떤 기준에서도 이례적이다.
애튼버러를 영국인들은 '국보'라 부른다. 1952년 BBC 입사 후 흑백 TV가 VR 시대가 될 때까지 현역으로 뛰고 있다. 우리가 알았든, 몰랐든 한국인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KBS가 1970년부터 방영해오고 있는 '동물의 왕국' 상당 편수가 애튼버러가 취재하고 내레이터를 맡은 작품인 것을 이번에 알았다(나는 작고한 이완호 성우의 더빙을 거쳐 그의 해설을 접한 세대로 사바나에 관한 지식 대부분을 '동물의 왕국'을 보고 배웠다).
애튼버러는 '주 퀘스트(Zoo Quest)' '지구 위의 생명(Life on Earth)' '플래닛 어스(Planet Earth)' 등을 거쳐 넷플릭스 '우리의 지구(Our Planet)'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걸작 다큐를 통해 자연의 경이를 인류에게 선보였다. 근년에는 기후 위기와 해양 플라스틱 오염 개선을 위해 뛰고 있다. 이 비범한 100세 노인의 특징으로 BBC 동료들은 호기심과 친절, 헌신을 꼽았다. 또 '급변하는 세상에서 드물게 변하지 않는 존재'라고 평했다.
지금 르완다 숲속에는 파블로의 증손 세대가 살고 있다. 그동안 인간은 고릴라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축적된 지식을 재빨리 쏟아내는 능력에 있어 인공지능(AI)은 애튼버러를 능가할 것이다. 그러나 거기엔 애튼버러와 파블로가 도달했던 신뢰, 영장류적 동질감이 주는 감동이 없다.
영역은 달라도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물이 한국에도 있다. 최불암 연기 인생 68주년을 맞아 MBC가 이달 방영한 다큐의 제목은 '파하, 최불암입니다'다. 표정 변화에 비해 소리가 작은 특유의 '파하' 웃음을 최불암은 오래전 인터뷰에서 '노모를 의식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젊은것들끼리만 재미난 얘기를 하는 것으로 여기실까 신경 쓰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한다. 절제와 배려, 인격이 만들어낸 그 웃음은 참으로 호모 사피엔스적이다.
최불암 역시 내레이션의 대가다. 그가 나온 작품 중 '한국인의 밥상'을 특히 좋아하는데 최불암 해설, 정확히는 음색을 듣기 위해 봤던 것 같다. 그 말을 듣고 있으면 내 가족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편안하다. 그가 방송을 중단한 이후로는 마음 줄 채널을 못 찾고 있다. 한결같은 호들갑, 말장난, 진부함이라니…. 진정성이란 덕목이 최불암과 더불어 사라져버린 듯하다.
바라건대 애튼버러와 최불암이 오래오래 활동했으면 좋겠다. 그들처럼 호기심과 열정, 유머로 충만한 사람이 더 많이 나왔으면 한다. 인류는 어느 시대에나 그런 인간적 자질에 매혹됐다. AI 시대에는 더 그럴 것이라고 확신한다.
[노원명 논설위원]

매일경제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