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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포럼] 중앙은행장의 요건:배신과 뚝심

임명권력 요구 거부하는
성스러운 배신의 용기
금리인하 마약 갈구하는
대중 압박 견딜 뚝심 필요
김인수 논설위원
김인수 논설위원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차기 의장으로 지명된 케빈 워시를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카멜레온'에 비유했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맹비난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양적완화에 반대하던 매파적 신조를 버리고, 최고 권력자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금리 인하 요구에 찬성하는 모순된 행보를 보인 데 대한 비판이다.

이런 차가운 평가를 남의 나라 일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한국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임기가 4월로 끝난다. 이재명 대통령이 어떤 총재를 지명하느냐에 따라 저 차가운 평가는 한국에서 재연될 수 있다.

이재명 정부의 정책 기조는 명확하다. 서민 삶을 돌보겠다며 '돈 풀기'의 페달을 밟는 확장적 재정정책이다. 정부가 그 페달을 세게 밟을수록, 중앙은행장은 그 속도를 견제하는 브레이커 역할을 해야 한다. 재정과 통화가 동시에 돈 풀기에 나서는 '쌍끌이 확장'이 당장은 달콤할 수 있겠으나, 그 끝에는 물가 폭등과 자산 인플레이션이라는 참혹한 고통이 기다린다.

그러나 대부분의 권력은 경기 부양을 원한다. 지지율을 올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다. 그래서 중앙은행장이 금리를 낮추기를 원한다. 권력의 각본대로 움직이는 주연배우 역할을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 유능한 중앙은행장은 자신을 세운 감독의 시나리오를 과감히 찢어버리는 '배신자'의 길을 택한다.

1992년 조지 H W 부시는 대통령 재선 도전에 실패하고는 앨런 그린스펀 연준 의장을 향해 원망을 쏟아냈다. "나는 그를 (연준 의장에) 재임명했지만, 그는 내 신뢰를 저버렸다. 금리가 더 내렸더라면 재선될 수 있었다." 부시는 1991년 그린스펀을 연준 의장에 재지명하며 그에 대한 믿음을 표시했다. 그러나 그린스펀은 금리를 더디게 내렸고 실업률은 계속 7%를 넘었다. 결국 부시는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라는 캠페인을 펼친 빌 클린턴에게 패했다. 그린스펀이 부시에게는 배신자였겠으나, 통화 가치 수호라는 본연의 역할을 확실히 했을 뿐이다. 그렇기에 그 배신은 '성스러운 배신'이다.

확장적 재정 정책을 펼치는 현 정부 아래서, 신임 한은 총재가 걸어가야 할 길 역시 그와 같다. 대통령의 정책 기조를 뒷받침하라는 압박을 '독하게' 끊어내야 한다. 인플레이션 전조가 있다면 '금리'라는 칼을 꺼내 드는 배신이야말로, 한은 총재의 첫 번째 의무다.

배신이 권력과의 결별이라면, 뚝심은 금리 인하라는 달콤한 마약을 갈구하는 대중의 비명을 참아내는 고독한 인내다. 1980년대 연준 의장 폴 볼커는 그 뚝심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20%까지 올렸을 때, 분노한 농민들은 트랙터를 몰고 연준 본부 외곽에 집결했다. 주택건설업자들은 의장 사퇴를 촉구하는 목재를 보내며 그를 저주했다. 하지만 그는 꿋꿋이 고금리를 유지하며 인플레이션을 퇴치했다. 이는 미래 미국의 번영을 이끈 동력이 됐다. 이처럼 중앙은행장은 내일의 번영을 위해 오늘의 증오를 묵묵히 받아내야 한다. 볼커의 자서전 제목인 '견뎌내기(Keeping At It)'는 중앙은행장의 그 같은 숙명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미국 39대 대통령 지미 카터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카터는 볼커가 자기 앞에서 금리를 올릴 것을 분명히 했는데도 그를 연준 의장에 지명했다. 딱 한 번 공개 비판을 제외하고는 볼커를 계속 지지했다. 고금리로 인한 경기 침체가 재선 실패의 중요 원인이 됐는데도 말이다. 이 대통령과 여당도 신임 한은 총재에게 '성스러운 배신'과 '고독한 뚝심'을 허락해야 한다. 중앙은행장이 권력의 충복이 되는 순간, 화폐가치는 무너진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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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차기 의장으로 지명된 케빈 워시는 정치적 동물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이는 한국은행 총재 지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재명 정부 아래서 신임 총재는 경제 부양 압력을 과감히 단절하고, 인플레이션을 저지하기 위해 금리를 조절하는 배신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

대통령과 여당은 중앙은행장의 독립성을 보장하며 '성스러운 배신'과 '고독한 뚝심'을 허락해야 경제 안정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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