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폭염에 따른 농산물 가격 폭등에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국제유가 급등이 겹치면서 하반기 소비자 물가에 빨간불이 켜졌다. 에너지 비용과 장바구니 물가가 동시에 치솟는 ‘더블 악재’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염려감이 커진 것이다.
11일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8월 평균 오이 10개 가격은 1만2144원으로 6월 7799원 대비 56%가량 뛰었다. 배추 1포기 가격도 6월 3691원에서 8월 4287원으로 뛰었다. 시금치 100g은 6월 817원에서 8월 들어 1890원으로 2배 이상 급등했다. 시금치와 상추는 고온이 이어지면 잎이 시들거나 타서 상품성이 떨어지고 출하량도 감소한다. 오이와 애호박 역시 고온으로 생육 부진과 낙화, 기형과 등이 발생할 수 있다.
다만 8월 배추 소매가격은 포기당 4226원으로 평년보다 26% 낮고 무는 개당 1880원으로 32%, 양배추는 3192원으로 23% 각각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물가 상승세는 다른 품목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 폭염으로 고온에 취약한 엽채류와 시설채소 가격이 단기간에 급등하고 있어서다.
축산물 가격도 문제다.
지난 7일 기준 폭염으로 가축재해보험에 신고된 폐사 가축은 90만1602마리에 달했다. 이 중 95%가 닭, 오리 등 가금류다. 추석을 앞두고 사과·배 등 과일도 고온에 따른 생육 부진과 일소 피해가 발생할 경우 상품 가격이 오를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국제유가까지 다시 물가의 복병으로 떠올랐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국제유가가 지난 10일 하루 만에 5%가량 급등하는 등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 브렌트유 기준 배럴당 80달러 선에서 등락을 반복하며 정부의 올 하반기 예상치(두바이유 기준 78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국제유가 상승은 휘발유·경유뿐 아니라 운송비와 생산비를 통해 가공식품과 외식 등 다른 품목으로도 번질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5월 국제유가가 10% 오르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최대 0.2%포인트가량 끌어올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물가 상승률은 지난달만 해도 2.8%로 3개월 만에 2%대로 내려오면서 안정적으로 관리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 8월 일부 이동통신사가 통신요금을 대규모 할인한 데 따른 기저효과가 사라지면서 정부는 이 요인만으로도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약 0.6%포인트 끌어올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즉 8월 물가 상승률 3%대 복귀는 사실상 기정사실화된 셈이다.
이 상황에서 국제유가 급등과 폭염이라는 두 외부 변수가 추가적인 상방 압력으로 등장했다.
이에 정부는 에너지와 먹거리 가격을 동시에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중동발 공급 차질에 대비해 대체 원유 도입을 추진하고 이달 중 비축유 스왑을 재가동하는 한편 국제공동비축 확대와 비축물량 조기 입고도 추진한다.
농축수산물은 지난 7일부터 폭염·가뭄 특별관리기간을 운영하고 산지 작황과 가격을 집중 점검하고 있다. 공급 부족에 대비해 확보한 배추 1만5000t과 무 6000t도 필요할 경우 시장에 공급한다. 고수온 피해가 우려되는 수산물은 조기 출하와 긴급 방류 등을 지원한다.
장바구니 부담을 낮추기 위해 라면·즉석식품·빙과류 등 가공식품 3838개 품목을 대상으로 이달 중 최대 57% 할인을 추진한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7월 물가는 3개월 만에 2%대로 둔화됐으나 8월은 지난해 통신요금 일시 할인 등에 따른 기저효과, 폭염 등으로 인해 상방 압력이 상존하는 상황”이라며 “물가는 여름철 폭염 등에 따라 상방 압력이 높은 상황이지만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범부처에서 물가 안정 노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매일경제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