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몽상에 깃든 무의식의 구도를 파고든 책
'문학을 창작하는 사람들은 그 소재를 과연 어디에서 가져올까?'
누군가를 사로잡고 누군가는 생각조차도 불가능해 보이는 '감동'을 어디서 가져오느냐는 물음이었다.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작가들에게 물어본다고 해서 그들은 대답할 수 있을까?"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출간된 '프로이트 전집'의 한 챕터인 이 글에서 프로이트는 아이들의 '놀이'에 집중한다.
한때 어린아이였던 우리는 모두 놀이의 주체였다. 취향에 따라 사물들을 배열하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곤 했다. 아이들은 놀이를 진지하게 여긴다. 어른들이 보기에 단순한 장난 같지만, 아이들은 자기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이때 프로이트는 문학 창조자가 결국 놀이를 하는 아이와 동일한 것을 하고 있다고 본다.
"새로운 질서에 맞추어 자신의 취향에 따라 사물들을 배치하고 있다는 면에서 아이는 마치 한 사람의 시인처럼 행동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이 사용하는 언어 속에는 어린아이의 놀이와 시인의 창조 행위 사이의 이러한 유사성을 일러주는 흔적들이 남아 있다."
예술의 경우 현실에서 제공하지 못하는 몽상의 세계를 타인에게 펼쳐 보인다. 이 놀이의 '관객'들은 창조자의 이야기를 듣고 보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작가들은 때로 거부감을 얻거나 냉담한 반응을 얻더라도 그 몽상을 멈추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고백을 들으며 공감하고 숨겨야 하는 욕망에 고개를 끄덕인다.
"문학 창조자는 낮에 꾸는 꿈을 변형시키거나 베일로 가림으로써 자아 예찬이 주조를 이루는 꿈의 성격을 약화시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몽상을 통해 순수하게 형식적인, 다시 말해 미학적인 즐거움을 제공하여 독자들을 유희의 세계로 인도한다."
프로이트의 주장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문학을 지나치게 '개인의 욕망'으로 환원한다는 점, 작품에 내재된 역사적·사회적 의미가 희미하다는 점, 나아가 '의미'의 출발점은 작가 한 명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수많은 언어와 문화적 코드의 결합이란 점(롤랑 바르트)에서 프로이트의 강연은 공격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프로이트의 질문이 무효인 건 아니다. 모든 몽상이 문학이 되는 건 아니지만 누군가의 사적인 고백에 독자는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사적인 몽상은 공적인 즐거움으로 변환된다. 나의 욕망이 우리의 이야기로 변환되는 순간을 우리는 자주 목격하고 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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