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하닉이 쏘아올린 공
빅테크 연봉에 철밥통 고용
둘 다 달라는 한국 노조
'비대칭 특권' 어디에도 없다
빅테크 연봉에 철밥통 고용
둘 다 달라는 한국 노조
'비대칭 특권' 어디에도 없다
물론 사전 예고도 없이 새벽에 이메일 한 통으로 해고를 통보하는 냉혹한 방식은 거센 논란을 낳았다. 하지만 격변하는 기술 경쟁 속에서 인건비를 줄여 확보한 현금 흐름으로 미래 성장동력에 투자하겠다는 기업의 결정을 마냥 비난하기는 어렵다. 시장 변화에 따라 인력을 재배치하고 비용 구조를 조정할 수 있는 유연성이 기업에 보장되기에 가능한 일이다.
반면 한국 노동시장의 현실은 딴판이다. 최근 카카오는 창사 이래 첫 파업에 돌입했다. 영업이익의 13~14%를 성과급으로 떼어달라는 게 노조의 핵심 요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쏘아 올린 'N% 성과급' 후폭풍이 정보기술(IT) 업계로 확산된 결과다. 현대자동차, LG 등 대표 기업 노조들 역시 업계 최고 수준의 보상을 요구하며 사측을 압박하고 있다.
진짜 문제는 성과의 과실은 더 많이 요구하면서도 기업이 감당해야 할 위험과 변화의 부담은 외면하려는 태도다. 실제로 카카오 노조는 성과급 확대뿐 아니라 계열사 정리 과정에서의 인력 효율화조차 '고용 불안'이라며 거부하고 나섰다. 기업의 성과는 나누자면서도 경쟁력 유지를 위한 구조조정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포함해 현재 한국 노동계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정서이기도 하다.
한국 노조의 요구는 한마디로 '보상은 미국 빅테크처럼, 고용은 일본·유럽처럼' 해달라는 것이다. 보상과 고용안정이라는 두 개의 떡을 모두 쥐겠다는 것이지만, 세계 어디에도 이런 '비대칭적 특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텔, 구글 등 미국 빅테크들은 억대 연봉과 파격적인 성과급을 지급하지만, 업황이 악화되거나 전략 전환이 필요할 경우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근로자들도 이를 시장의 룰로 받아들인다. 반면 유럽과 일본은 상대적으로 강한 고용안정성을 보장받는 대신, 성과 보상의 폭이 제한적이다.
한국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국제 평가에서도 드러난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은 2025년 한국의 노동시장 경쟁력을 69개국 중 53위로 평가했다. 낮은 노동유연성이 고질적 약점으로 꼽힌다. 이처럼 굳건한 고용 방어벽 위에 세계 최고 수준의 보상까지 얹으려 하니 기업이 미래에 베팅할 여력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높은 보상과 고용안정은 본질적으로 맞교환(Trade-off) 관계다. 미국 빅테크식 보상을 원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고용유연성도 받아들여야 하고, 일본·유럽식 철밥통 고용을 원한다면 보수적인 성과 보상을 감수해야 한다. 노사가 어떤 모델을 선택할 것인지 솔직하게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는 것, 그것이 지금 한국 노동 담론이 지향해야 할 핵심이다.
AI 시대의 경쟁은 생각보다 훨씬 가혹하다. 미국 빅테크들이 인력 감축을 하면서까지 AI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사활을 건 투자 전쟁을 벌이는 동안, 한국은 성과급 분배와 고용 보장 논란에만 매몰돼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노동계가 기업의 과실만 요구하고 변화에 따른 부담은 거부한다면 결국 투자도, 경쟁력도, 일자리도 지키기 어렵다. 양손에 떡을 쥘 수는 없다. 더 큰 보상을 원한다면 더 큰 책임과 위험도 함께 나눠야 한다. 그것이 AI 시대 글로벌 시장의 냉정한 룰이다.
[심윤희 논설위원]

매일경제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