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전기차 침투 위협적인데
한국 시장은 사실상 무방비
미·EU는 노골적 산업 보호
우리는 어떤 전략 갖고 있나
한국 시장은 사실상 무방비
미·EU는 노골적 산업 보호
우리는 어떤 전략 갖고 있나
1995년 BMW가 한국에 진출할 당시 그해 판매량은 200대에 불과했다. BMW가 누적 1만대를 돌파한 건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02년이다. 반면 중국 전기차 업체 BYD(비야디)는 불과 11개월 만에 같은 고지를 넘었다.
BYD에 이어 지커, 샤오펑, 체리 등이 줄줄이 한국에 상륙할 채비를 하고 있다. 샤오펑은 지난달 중국을 찾은 국토교통위원회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홍보에 열을 올렸다. 현재도 전기차 구매자 3명 중 1명이 중국산을 택하고 있는데 곧 국내 점유율 50%를 넘어서는 순간이 온다. '전기차=중국산'이라는 인식이 고착될 판이다.
중국 전기차는 가격 경쟁력만을 앞세운 게 아니다. 배터리·자율주행 등 기술적 측면에서 상당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싸구려라고 애써 폄하하기에는 중국 제품의 수준이 너무 올라와버렸다. 요즘 현대차 수뇌부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상상 이상이라고 한다.
한국 기업들은 로봇청소기 시장에서 쓴맛을 봤다. 2019년 상륙한 로보락의 국내 점유율은 절반을 넘어섰는데, 이들은 처음부터 고급 시장을 정조준했다. 그리고 삼성·LG의 가전 철옹성을 무너뜨렸다. 이젠 중국 전기차가 로봇청소기의 데자뷔가 될 공산이 크다.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한국을 집중 공략하는 배경에는 미국, 유럽연합(EU), 일본에 비해 진입 문턱이 낮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우선 관세장벽. 미국은 중국 자동차에 100% 이상의 고율 관세를 때리고, EU도 최대 45%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8%로 낮다. 이 정도면 중국 업체들이 가성비를 앞세워 능히 뚫어낼 수 있다. 일본 시장은 독특하다. 일본 자동차 시장에서 순수 전기차 비중은 2% 미만으로 주요 선진국 중 가장 낮다.
결국 '낮은 울타리'로 평가되는 한국이 중국의 좋은 먹잇감이다. 중국의 전기차 과잉 생산은 경쟁국들에 크나큰 골칫거리다. 전 세계 신규 전기차의 70%가 중국산이다. 생산량이 워낙 넘치다 보니 중국 내수 시장에서 소화되고 남는 물량이 해외로 쏟아진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대니 로드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초세계화를 포기하고 얕은 세계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일찌감치 조언했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역임한 제이크 설리번도 '작은 마당, 높은 울타리' 원칙을 거론했다. 자국의 핵심 이익을 사수하려면 특정 영역에서 펜스를 높게 치는 선택적 보호주의가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도널드 트럼프 시대 이후 세상은 확 달라졌다. 각자도생의 살기가 넘쳐난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여전히 자유무역의 대의명분에 얽매인 분위기다.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을 장려하는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수출 한국의 든든한 버팀목이었지만, 그 체제가 와해됐다. 우리만 남 눈치 보며 점잖은 척하다가 실리를 놓치는 건 아닐지 조바심이 난다.
오죽하면 업계 일각에선 국내 산업 방어를 위해 미국과 EU처럼 관세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예를 들어 자동차 관세를 현행 8%에서 25%로 올릴 필요가 있다는 주문이다. 물론 한국이 섣불리 나섰다간 경제 보복을 초래할 것이라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그럼에도 중추 산업이 허물어지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위기감의 발로다.
아울러 전기차가 수집하는 각종 위치·고객 데이터를 국내 서버에 저장하고 해외 반출을 금지하는 데이터 보안 규제나 구매보조금 차등 지급, 국내 생산 촉진 세제 등 정부 차원의 다각적인 전략이 시급하다. 전후방 연관 생태계가 방대한 자동차는 로봇청소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황인혁 국차장 겸 디지털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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