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 새치기에 흉기 꺼내들고
항공료 인상·쓰봉 품귀에 분통
에너지 마르면 민심도 팍팍
공급망 대대적 재편 서둘러야
항공료 인상·쓰봉 품귀에 분통
에너지 마르면 민심도 팍팍
공급망 대대적 재편 서둘러야
#장면2. 지난달 30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알뜰주유소. 휘발유 가격이 ℓ당 1789원으로 주변보다 50원 싸다는 소문에 차량 행렬이 끝없이 늘어섰다. 주유 순서를 기다리던 30대 남성은 새치기를 시도하는 차량을 보자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그는 차 안에 있던 흉기를 꺼내 상대 운전자를 위협했다. 놀라운 점은 그가 범죄 전력이 없으며, 음주 상태도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치솟는 물가 속에 쌓인 불안감이 한순간 '분노'로 터져나온 것이다.
#장면3. 서울 시내 편의점 곳곳에는 '쓰레기 종량제 봉투 없음'이란 안내문이 붙었다. 비닐 원료인 나프타 수급 차질 우려에다 "봉투값이 폭등할 것"이라거나 "무단 투기 시 과태료 100만원"이라는 가짜뉴스가 사재기 열풍에 불을 질렀기 때문이다. 1인당 구매량을 제한하는 점주와 더 사겠다는 손님 사이의 실랑이는 이제 일상이 됐다. 정부가 "재고가 충분하고 가격 인상도 없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시장의 불신은 여전히 깊다. 2020년 팬데믹 당시 '마스크 대란'을 겪으며 각인된 학습 효과다. '미리 확보하지 않으면 생존이 위협받는다'는 방어기제가 사소한 물건에까지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동발 고유가 쇼크가 만든 일상 풍경은 심상치 않다. 문제는 단순히 지갑을 위협하는 것을 넘어, 서민들의 평정심을 잠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소한 새치기에 흉기를 들고, 쓰레기 봉투 몇 장에 집착하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심리적 저지선이 무너지고 있다는 위험 신호다. 불안이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공동체의식은 증발하고 각자도생의 본능만 남기 마련이다. 이렇듯 에너지 수급 불안은 개인 일상을 흔드는 데 그치지 않고 공동체의 기본 질서마저 위태롭게 만든다. 결국 에너지가 공장을 돌리는 연료를 넘어 한 사회의 안보를 지탱하는 '생존의 토대'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위기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총성이 멈춰도 파괴된 에너지 인프라 복구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여기에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부과 등 자원의 무기화 움직임까지 겹치면서 '값싼 에너지의 시대'가 막을 내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제 정부는 선언적인 구호를 넘어 공급망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는 실전형 대책에 화력을 집중해야 한다. 무엇보다 70%에 달하는 중동 원유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급선무다. 호르무즈 해협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불거질 때마다 국가 전체가 휘청이는 구조를 방치할 수는 없다. 미주와 아프리카 등으로 도입처를 과감히 넓히고, 전략 비축유를 확충해 공급망 충격을 흡수할 완충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원전·가스·재생에너지의 균형을 통해 가격 변동성을 낮추는 에너지 체질 개선도 시급하다. 동시에 시장 불안을 증폭시키는 가짜뉴스 등도 선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에너지는 국가를 움직이는 혈액이다. 혈관이 막히면 민심도 마르고 사회도 멈춘다. 국민이 다시 평정심을 되찾는 길은 오직 정부의 치밀하고 예측 가능한 에너지 행정에 달려 있다.
[심윤희 논설위원]

매일경제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