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동품 CEO 솎아내려다
불량품 들이는 실수 말아야
리더십 본질, 연차 아닌 능력
주주 3분의 2 지지 얻어낼
명품 리더가 韓 금융의 자산
불량품 들이는 실수 말아야
리더십 본질, 연차 아닌 능력
주주 3분의 2 지지 얻어낼
명품 리더가 韓 금융의 자산
요즘 금융권에서 회자되는 '골동품'이라는 단어는 이 같은 사전적 의미와는 다소 결이 다르다. '시대에 뒤처진 존재'라는 비유적 낙인이 덧씌워진다.
발단은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의 발언이었다. 그는 지난 1월 금융지주 회장들의 장기 집권을 비판하며 "회장이 6년 이상 연임하게 되면서 (차기 회장 후보군이) 에이징돼 골동품이 된다"고 지적했다. 장기 집권하는 회장들은 물론, 회장 눈치만 보고 있는 현직 은행장 등 차기 회장 후보군까지 '골동품'의 도그마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 자체를 가볍게 넘길 수는 없다. 금융지주 회장의 지나친 장기 집권은 조직을 사유화하고 내부 견제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의가 '골동품 방지'에만 머물러서는 곤란하다. 리더십을 연한(年限)의 문제로 환원하는 순간, 정작 '리더십의 질'이라는 본질은 흐려진다. 금융은 숫자로 포장된 신뢰의 산물이다. 수백조 원의 자산을 책임지는 지주 수장의 무게는 참신함만으로 채워질 수 없다. 위기 대응 능력, 리스크 관리 역량, 국제 자본시장과의 소통 경험은 단기간에 축적되는 자산이 아니다.
결국 장기 집권을 막겠다는 목적에 매몰돼 박스에서 갓 꺼낸 신제품만 찾다가는 자칫 '불량품'을 마주할 수 있다. 충분한 경영 훈련과 위기 관리 역량을 검증받지 못한 인물이 돌연 전면에 나설 경우, 미숙함의 비용은 고스란히 주주와 금융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금융당국은 이제 '골동품 방지'를 위한 말의 성찬을 넘어 제도적 대못을 박으려 하고 있다. 이달 말 발표될 '금융사 지배구조 선진화 방안'에는 회장이 잠재적 후보군을 고사시켜 자신만이 유일한 대안이 되도록 만드는 '에이징 전략'을 원천 봉쇄하는 방침이 대거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금융지주 최고경영자(CEO)가 연임 또는 3연임을 시도할 경우 주주총회 '특별결의'를 거치도록 하는 방안이다. 상법상 주주총회 특별결의는 출석 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과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연임을 위한 문턱을 대폭 높이겠다는 취지다.
제도 개선 전에 시장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금융이 최근 이사회를 열고 4대 금융지주 중 처음으로 대표이사 3연임의 경우 보통결의가 아닌 특별결의로 의결 기준을 격상하기로 한 것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당국이 연임 조건으로 검토 중인 특별결의 제도의 양면성이다. 실력과 신뢰를 갖춘 리더에게는 반드시 장기 집권의 장애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히려 '거장'으로 공인받는 왕도(王道)가 될 수 있다. 금융당국이 세운 3분의 2 찬성이라는 높은 벽이 주주들에게 받은 '훈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압도적인 경영 성과와 주주가치 제고를 몸소 증명한 CEO라면 까다로운 외국인 주주와 기관투자자들이 앞다퉈 기립박수를 보내며 연임의 길을 열어줄 것이다.
우리는 이제 '몇 년을 하느냐'는 산술적 논쟁에서 벗어나 '얼마나 제대로 하느냐'는 본질적 물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당국의 칼날이 고인 물을 솎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진정한 명품 CEO를 길러내는 토양이 되길 기대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깊은 빛을 더하는 고려청자처럼, 성과로 세월을 증명하는 CEO. 특별결의라는 높은 벽을 넘어 시장의 선택을 다시 받는 리더. 그들이 한국 금융이 축적해야 할 진정한 자산이다.
[손일선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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