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밖 세상 몰랐던 김부장
짠내 나는 추락에 공감 물결
퇴직이 새 출발점 되려면
재도전 생태계 구축 필요
짠내 나는 추락에 공감 물결
퇴직이 새 출발점 되려면
재도전 생태계 구축 필요
제목부터 강렬한 화제의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에 대한 세간의 평가다. 서울 아파트와 대기업 부장이라는 조건은 한국 사회에서 '성공'의 종착지로 여겨지는 상징들이다. 그러나 드라마가 조명하는 것은 성공의 빛나는 정점이 아니라, 그 이면에서 흔들리는 중년 남성의 퇴직 공포와 가장의 불안이다. 성공한 줄 알았던 김 부장의 짠 내 나는 '처량함'에 많은 이들이 공감 버튼을 누르는 이유다.
객관적 지표로만 보면 김 부장은 분명 상위 10%의 삶을 산다. 서울 자가, 연세대에 다니는 아들, 묵묵히 응원해주는 아내. 여기에 5억원에 달하는 명예퇴직금까지 쥐었다. "이 정도면 짠 내가 아니라 배부른 투정"이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어느 직장인은 "재벌 걱정, 연예인 걱정, 대기업 부장 걱정이야말로 가장 쓸데없다"는 농담 섞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드라마가 건드리는 지점은 계층의 문제가 아니다. 정체성의 붕괴다. 한국의 50대에게 직장은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삶을 지탱해온 중심축이었다. 많은 이들이 '회사가 곧 나'라고 믿으며 살아왔고, 명함은 사회가 부여한 존재 증명서나 다름없었다. 그런 세계에서 밀려난다는 공포는 자산의 많고 적음과 무관하게 깊다. 명퇴 통보는 곧 자아 좌표의 소멸이기 때문이다. "대기업 25년 차 부장으로 살아남아 서울에 아파트 사고, 애 대학까지 보낸 인생은 위대한 거야"라고 외치던 그가 명퇴 통보 앞에서 허둥대고 자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 부장의 서사가 중년 남성들을 울리는 것은 퇴직이야말로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맞닥뜨릴 '예정된 미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100대 기업에서 일반 직원이 임원으로 승진할 확률은 0.82%에 불과하다. 주변에서도 임원 승진과 명퇴의 갈림길에 선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김 부장이 상가 분양 사기에 휘말려 나락으로 떨어지는 장면은 준비 없이 광야로 내몰린 퇴직자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럼에도 우리가 김 부장에게 돌을 던질 수 없는 이유는, 그 어수룩한 실수가 탐욕이 아닌 가장의 절박함에서 비롯됐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의 실패는 '회사형 인간'으로 지나치게 충실히 살아온 세대가 지닌 취약함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한국 중년의 취약성은 단선적 생애 공식의 붕괴와 직장 중심적 삶의 후유증에서 비롯된다. 젊어 일하고, 중년에 책임지고, 노년에 물러난다는 오래된 모델은 이미 효력을 잃었다. 기술 변화는 가팔라지고 조직은 더 젊은 인력을 원한다. 직장 밖 관계망도 빈약해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청년기에 멈춰 있다. 직장이란 보호막이 사라지는 순간, 중년은 경제적 부담에 더해 사회적·정서적 고립까지 떠안게 된다.
김 부장은 허구의 인물이지만, 그를 둘러싼 위기는 철저히 한국 사회가 만든 구조적 산물이다. 재교육 시스템은 형식적이고, 직업 전환은 구호에 그치며, 지역사회나 커뮤니티는 취약하다. 중년이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다른 길을 모색하고, 인간관계를 다시 구축할 수 있는 생태계는 부재하다. 이런 환경에서 퇴직은 전환이 아니라 추락의 전조가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퇴직은 끝이 아니다. 또 다른 삶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김 부장은 결국 바닥을 딛고 일어설 것이다. 중년이 두려움이 아닌 가능성을 마주할 수 있으려면 사회가 전환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재도전을 뒷받침하는 현실적인 안전망이 바로 그 시작이다.
짠 내 김 부장은 우리 모두의 초상이다. 직업이 없어져도 삶은 계속된다. 명함이 사라져도 진짜 '나'는 남는다. 이 땅의 수많은 김 부장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의 '브라보 라이프'는 지금부터라고.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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