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도장·힘찬 필체…‘국제법의 무력함’ 담아
일본에서 떠돌던 안중근 의사의 유묵이 고국으로 돌아왔다. 안 의사가 순국하기 불과 며칠 전 남긴 글씨로, 일본에서 최소 세 차례 소장자가 바뀐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유산청은 광복절을 앞둔 13일 서울 중구 덕수궁 중명전에서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과 함께 일본에서 환수한 ‘만국공법불여대포(萬國公法不如大砲)’를 언론에 최초 공개했다.
‘만국공법불여대포’는 1910년 3월 중국 뤼순감옥에서 안 의사가 쓴 유묵이다. 국제법이 대포만 못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유묵이 일본에서 발견된 것은 지난해 5월이다. 국외재단이 현지 협력망을 통해 작품의 존재를 처음 확인하면서 환수 작업에 착수했다. 국외재단은 작품의 진위와 소장 경위, 전승 과정 등을 면밀히 조사했고, 현지 소장자와의 협상을 거쳤다. 국가유산청은 행정적 지원에 나섰다. 같은 해 11월 국내 반입에 성공했다.
유묵 뒷면에는 최초 소장자와 전승 경로가 구체적으로 적은 묵서가 남아있다. 묵서에는 1910년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와 사형 집행에 이르기까지의 경과, 최초 소장자, 본 유묵을 표구·보존한 이유, 유묵을 표구한 소장자에 대한 기록이 있다.
묵서에 따르면 이 유묵은 당시 뤼순감옥의 형무소장 구리하라 사다키치가 소장했다. 구리하라는 여러 일화를 통해 안중근 의사의 수감 기간 중 인간적인 배려를 보였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스스로를 ‘평문광생 뇌협일인’이라고 밝힌 인물에게 전해졌다. 이는 ‘평씨 집안의 후손이며 속세의 이익이나 권력에 얽매이지 않는 사람’라는 의미다. 이 인물은 유묵을 보존하기 위해 표구하고 보관했다. 이후 유묵이 다른 소장자에게 넘어가면서 최소 세 차례 소유자가 바뀌었다.
유묵에 적힌 ‘경술삼월 어려순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라는 글귀가 눈길을 끈다. ‘1910년 경술년 3월 뤼순감옥에서 대한국인 안중근이 쓰다‘라는 뜻이다. 안 의사의 순국일이 1910년 3월 26일인 만큼 순국을 불과 며칠 앞두고 남긴 글씨임을 알 수 있다. 작품의 왼쪽 하단에는 안 의사 유묵의 상징인 손도장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만국공법불여대포’라는 문구에는 안 의사가 국제법과 국제질서에 대해 느낀 회의가 담겨 있다. 안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정당한 전쟁 행위를 수행한 것이라 주장했다. 이에 따라 만국공법에 따른 재판을 요구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안 의사를 단순 살인죄로 기소해 사형을 선고했다.
안 의사는 옥중에서 집필한 ‘동양평화론’을 통해서도 만국공법에 따른 동양의 평화와 질서 유지를 주장했다. 국제법을 믿고 그에 따른 재판을 요구했지만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을 마주한 것이다.
서체에서도 안 의사의 특징이 뚜렷하다. 행서를 기본으로 하면서 해서와 초서를 섞어 썼으며, 여덟 글자를 일필휘지로 써 내려간 힘 있는 필세가 돋보인다.
특히 본문의 ‘萬(만)’자를 초서로 표기한 점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황금백만냥불여일교자’에서도 동일하게 확인되는 특징이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이번 공개를 통해 선열들의 광복을 위한 염원과 헌신을 되새기고 국민적 자긍심을 고취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박정혜 국외재단 이사장은 “앞으로도 국가유산청과 함께 국외에 있는 우리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발굴·환수해 그 가치를 국민과 함께 널리 공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매일경제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