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변형작물 재배허용
美中日 이어 EU조차 통과
韓, 25년 종자연구 공든탑
시민단체 반대에 예산끊겨
美中日 이어 EU조차 통과
韓, 25년 종자연구 공든탑
시민단체 반대에 예산끊겨
미국·중국·일본 등 주요국은 이미 기후위기 대응과 식량안보 확보를 목표로 생명공학 작물의 상업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들은 기능성을 높이고 내재해성을 극대화한 품종을 쏟아내며 글로벌 특허 선점 경쟁을 벌이고 있다. 유전자변형(GM) 기술에 가장 보수적인 유럽연합(EU) 의회마저 품종 개발 기간을 혁신적으로 단축할 수 있는 유전자 교정 작물 재배 허용 법안을 통과시켰다.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 환경 악화와 농약 감축의 절박함 그리고 글로벌 종자 시장에서 도태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결과다.
세계가 이처럼 '종자 주권'을 지키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농업 생명공학 시계는 거꾸로 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5년간 국가 차원의 작물생명공학 연구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다. 과학기술부의 '21세기 프론티어사업'(1000억원)을 시작으로 농촌진흥청의 '바이오그린21사업'(총 9112억원), 농림축산식품부의 '골든 시드 프로젝트' 등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 거대한 프로젝트들은 우수 논문과 특허라는 학술적 성과를 냈을 뿐 정작 식량안보나 해외 시장 개척이라는 산업화 관점의 결실을 맺는 데는 처참히 실패했다.
결정타는 2017년 9월이었다. 당시 농진청이 시민단체와 "GM 작물 생산을 추진하지 않고 사업단을 해체한다"는 협약을 체결하면서 국내 생명공학 연구는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과도한 규제와 연구 중단은 결국 정부의 '국가전략기술 육성 방안' 세부중점기술 도출 과정에서 농식품부와 농진청의 그린바이오 분야가 통째로 배제되는 참사로 이어졌다.
유전자 교정 기술은 전통 육종과 다름없어 주요국들이 규제를 면제하거나 완화하는 게임 체인저 기술이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유전자 교정 원천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있다. 농진청은 '차세대농작물신육종기술개발사업'(2020~2026)을 통해 글로벌 수준의 역량을 다져놓았다. 하지만 이 사업은 안타깝게도 내년 예산 조정 과정에서 재원 확보에 실패해 존폐 위기에 놓였다. 최근 농진청이 예산 재확보를 위해 다시 발 벗고 나선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만약 예산이 다시 확보된다면 우리는 과거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철저히 산업화 중심의 성공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먼저 학술용 연구를 넘어 국내 종자기업의 상용화 라인과 연계해 실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품종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 해외 연구기지를 적극적으로 확보하고 국제 협력체계를 가동하는 것도 중요하다. 치밀한 지식재산권(IP) 전략도 필수다.
농업은 이제 1차 산업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이 걸린 첨단 안보 산업이다. 규제의 쇠사슬을 끊고 예산과 제도를 뒷받침해야 할 때다.
[강병철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장]

매일경제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