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모비딕' 에이하브 선장
복수 집착해 선원들 죽음으로
검찰 지우기에 매달린 여당
피해자 외면한채 입법 강행
복수 집착해 선원들 죽음으로
검찰 지우기에 매달린 여당
피해자 외면한채 입법 강행
허먼 멜빌의 '모비딕'에 등장하는 에이하브 선장은 작품 내내 예견된 파국을 향해 달려간다. 흰 고래를 잡고야 말겠다는 집념만으로 그는 포경선 피쿼드호를 대서양에서 인도양으로, 다시 태평양으로 이끈다. 항해의 목적은 포경이 아니라 복수다. 동료들의 생명도, 배의 안전도 모비딕을 향한 그의 집착 앞에서는 뒷전이었다. 선원들은 항로를 돌리자고 애원하지만 에이하브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에게 모비딕은 단순한 고래가 아니다. 자신의 다리를 앗아간 숙명적 적수, 반드시 쓰러뜨려야 할 그의 네메시스였다. 모비딕이 정말 악마적 존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에이하브는 자신의 모든 상처와 분노를 흰 고래에 투사했고 모비딕에 대한 복수를 삶의 방향타로 삼았다. 에이하브를 내몬 광적인 집착은 결국 그를 고래와 함께 바다 밑바닥으로 영영 사라지게 만든다.
오래전 읽어 기억도 가물가물한 소설책 내용을 장황하게 되짚어본 이유는 형사소송법 개정을 강행한 더불어민주당의 검찰을 향한 맹목적 분노가 소설 속 에이하브의 파괴적 집착과 겹쳐 보여서다.
지난달 31일 여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수십 년간 이어온 대한민국의 법질서를 뒤흔드는 내용들을 촘촘히 담고 있다. 검사는 경찰이 송치한 사건을 검토하다 범죄 혐의나 증거관계에 빈틈을 발견하더라도 직접 보완수사를 할 수 없다. 참고인을 한 번 더 부르거나 계좌 흐름을 추가로 확인하고, 압수물의 의미를 다시 따져보는 일도 검사가 할 수 없다. 검사는 그저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하고 그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경찰은 다시 사건을 배당해 수사한 뒤 기록을 검찰로 돌려보내고, 검찰은 돌아온 기록을 토대로 기소 여부를 판단한다. 수사가 충분하지 않다면 또다시 경찰에 재수사를 요구해야 한다. 사건이 한 차례 왕복할 때마다 수개월이 걸릴 수 있고 담당자가 바뀌거나 수사의 맥락이 끊길 가능성도 있다.
특별사법경찰관에 대한 수사지휘권도 박탈했다. 수사 경험이 부족한 특사경이 복잡한 사건을 홀로 떠맡게 된 셈이다.
이에 더해 개정된 형사소송법은 '중대한 위법수사'와 '소추재량권의 현저한 일탈'을 공소기각 사유로 신설했다. 지금까지는 위법하게 확보한 증거를 배제한 뒤 나머지 증거를 토대로 유무죄를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앞으로는 법원이 실체적 판단에 들어가기 전에 재판 절차 자체를 끝낼 가능성이 생겼다. 무엇이 '중대한 위법'인지 기준마저 모호한 상황에서, 범죄 혐의의 실체를 끝내 가리지 못한 채 피고인이 법정을 빠져나가는 사례도 발생할 수 있다.
각계각층에서 문제점을 우려하는 경고가 이어졌지만 민주당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들은 검찰의 존재를 철저히 지워버리는 것을 형사소송법 개정의 목적으로 삼았을 뿐, 그 이후 벌어질 일들과 고통받게 될 피해자들에게선 눈을 돌렸다. 광적인 집착이 빚어낸 잔혹한 무관심이다.
길고 긴 소설의 마지막 부분, 마침내 모비딕과 맞닥뜨린 에이하브는 직접 보트를 타고 고래를 추격한다. 모비딕은 먼저 피쿼드호를 들이받아 침몰시키고, 에이하브는 무너져가는 배를 뒤로한 채 마지막 작살을 던진다. 하지만 숙원을 이뤘다고 확신한 순간, 빠르게 풀려나가던 작살줄이 그의 목을 휘감고 그는 순식간에 보트 밖으로 끌려나가 사라진다. 피쿼드호의 선원들은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수장되면서 에이하브의 복수는 비극으로 끝난다.
민주당은 작살을 던졌고 이제 국민들은 기도하는 방법밖에 없다. 튕겨나간 작살줄이 자신의 목을 휘감지 않기를, 적어도 자신과 가족은 침몰하는 포경선에 타고 있지 않기를 말이다.
[김동은 사회부장]

매일경제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