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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의 창] 개헌 논의, 권력구조 개편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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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중요한가, 제도가 중요한가? 오래된 논쟁이다. 이에 관해 사회과학 분야의 제도학파(institutionalism)는 매우 흥미로운 주장을 한다. 좋은 제도는 얼마든지 도입할 수 있지만 인간의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제대로 굴러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제도학파란 이름과 달리 제도에 앞서 인간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최근의 개헌 논의를 보면서 부단한 제도개혁도 필요하지만 의식개조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모든 제도에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지만, 제아무리 훌륭한 제도도 그것을 운영하는 인간이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건국 이래 우리는 열 번이나 헌법을 개정했다. 거의 모두 격변기에 헌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민주주의의 발전이기보다 민주주의의 후퇴였다. 장기적 안목에서 국민주권의 신장이라는 목표보다 단기적 시야에서 권력구조의 개편에 대한 이해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는 개헌의 방향이 앞으로 권력구조 개편을 넘어 국민주권의 확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대통령제는 양당제 아래 가장 효과적이다. 우리나라에서 의원내각제에 대한 관심이 자주 나오는 이유도 다당적 정당체제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대통령제에 대한 회의가 일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당체제는 형식적으로 다당제지만 실제론 패권적 정당체제에 가깝다. 역대정부를 통해 보면 여소야대 상황도 있지만 대체로 집권당이 독주하면서 중소 야당들이 공존하는 정당체제다.

지금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5년제 단임의 직선 대통령제는 1987년 6ㆍ10 민주항쟁 이후 여야간 합의에 의해 도입됐다. 당시 장기집권의 우려를 해소한다는 명분 아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 대선주자들 사이 타협의 결과로서 나타난 이 제도는 이미 수명을 다했다고 봐야 한다. 민주화 이후에도 권력집중과 승자독식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바꿔지지 않은 현실을 고려하면 단임 대통령제를 벗어날 필요가 있다. 조기 레임덕 아래 국정의 연속성이 끊어지는 5년 단임제는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다.

그렇다면 헌법연구자문위원회가 제시한 '이원정부제'와 '4년 중임 정부통령제'의 현실접합성은 어떠한가. 대통령은 직선으로 뽑고 하원에서 총리를 선출하자는 이원정부제는 오스트리아의 의원내각제 유형의 이원집정제에 가깝다. 총리가 외교, 국방, 치안을 포함하는 국정 전반의 통할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의원내각제의 경험이 없는 곳에서 과연 상ㆍ하원으로 나뉜 국회가 책임을 다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권력분산이라는 원래의 목적이 오히려 정치담합을 통해 국정의 운영을 농단할 수 있다. 대통령제의 성격을 지니는 프랑스의 이원정부제도 서로 다른 정당 출신의 대통령과 총리가 동거정부를 구성할 때 정부 안의 노선 차이로 인해 국정난맥과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

현행 단임제 제도 아래에서 대통령의 5년 임기와 국회의원의 4년 임기가 연동하지 않아 대선과 총선을 서로 달리 치를 수밖에 없다. 이는 시간과 예산이라는 국력의 낭비일 뿐만 아니라 한국 정치를 과열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4년 중임 정부통령제는 국정의 연속성을 보장하면서 대통령의 임시국회소집요구권과 법률안제출권을 삭제해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고 있다.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도 국회가 선출하게 되어 있다. 평상시는 의원내각제로 운영되고, 비상시는 대통령의 역할이 강조된다.

어떠한 방향으로 개헌 논의가 이어질지를 떠나 생명권을 보장하고, 사상의 자유를 강조하고, 그리고 정보기본권과 정치적 망명권을 새로 포함한 것은 국민의 기본권 확대에 대한 열망을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2012년은 대선과 총선이 같이 치러지는 해다. 개헌에 관한 국민의 중의를 모아 단지 권력구조 개편을 넘어 국민주권의 확대로 이어질 수 있는 개헌 논의가 필요하다.

[임현진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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