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이 점입가경이다. 한미사이언스 대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과 송영숙 회장 모녀 간 지분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주식 가압류와 법인카드 유용 의혹 제기 등 장외 공방으로 확산하고 있다.
4자 연합 균열에 경영권 분쟁 2막
신동국 vs 송영숙·임주현·킬링턴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2024년 초 OCI그룹과의 통합 시도에서 비롯됐다. 5400억원에 달하는 상속세 부담을 해결하기 위해 송영숙 회장과 장녀 임주현 부회장이 OCI와의 통합을 추진하자, 장남 임종윤·차남 임종훈 형제가 반발하며 경영권을 두고 정면충돌했다. 초반에는 형제 측이 개인 최대주주인 신동국 회장을 끌어들여 이사회를 장악했지만, 같은 해 7월 신 회장이 모녀 측으로 진영을 바꾸면서 판세가 뒤집혔다.
지난해 2월 임종훈 대표의 사임으로 송영숙 회장이 한미사이언스 단독 대표로 복귀하며 모녀 측이 최종 승리를 거뒀다. 그해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전문경영인 김재교 대표 체제가 공식 출범했고, 송영숙 회장도 이사직을 내려놓으면서 ‘후방 지원’ 역할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했다.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반포 시니어케어 투자 사업을 둘러싸고 신동국 회장이 승인을 보류하자 송영숙·임주현·킬링턴유한회사(사모펀드 라데팡스파트너스가 설립한 특수목적법인) 측은 “해당 사업에 조건 없이 참여하기로 합의해놓고 이를 번복했다”며 600억원 위약벌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의결권 전부를 공동 행사하기로 약속한 4자 협약을 신 회장이 먼저 깨뜨렸다는 주장이다. 이후 4자 연합에 균열이 생기며 또다시 2차 경영권 분쟁으로 치닫게 됐다.
신 회장 손들어준 가압류 인용
창업 일가 법카 유용 폭로도 이어져
최근 공세를 벌이는 쪽은 신동국 회장 측이다. 신 회장이 “법원이 7월 29일 임주현 부회장의 한미사이언스 100억원 규모 주식에 대한 가압류 신청을 인용했다”고 밝히면서다.
자료에 따르면, 신동국 회장과 송영숙 회장, 임주현 부회장, 킬링턴유한회사는 4자 연합을 결성하면서 각자 보유주식에 관한 의결권 전부를 공동 행사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임 부회장은 4자 협약 당시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주식이라고 밝힌 9.15% 중 2.7%를 에쿼티퍼스트 펀드에 환매조건부로 넘겼고, 에쿼티퍼스트가 해당 주식을 시장에 매각해버렸다는 것이 신 회장 측 주장이다. 이로 인해 임 부회장은 지난해와 올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보유주식 9.15% 중 2.7%에 해당하는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했다며, 두 차례에 걸쳐 4자 협약상의 약속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법원의 가압류 인용 결정에 대해선 “임주현 부회장의 행위가 ‘각자 보유한 주식 지분 전체의 공동 행사’라는 4자 연합의 기본적 신뢰를 훼손한 것으로서 위약벌 대상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다만 가압류는 채권 보전을 위한 잠정 조치로, 위약벌 책임 여부는 본안 소송에서 최종 확정된다.이에 앞서 법인카드 유용 등 송영숙 회장 일가의 부도덕성을 폭로하는 기자회견도 열렸다. 2023년 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송영숙 회장 일가와 비서실의 법인카드 결제 내역을 입수해서 분석한 결과, 백화점 명품관과 의료기관, 호텔, 미용실, 화장품·가구 판매점 등에서 거액이 결제됐다는 내용이 골자다. 고가 법인차량 구매·렌트, 골프·콘도 회원권 사유화 의혹도 함께 제기됐다.
기자회견을 연 이는 김태호 전 큐어세라퓨틱스 대표다. 그는 1996년 한미약품에 입사해 약 3년 6개월간 근무했으며, 1997년부터는 창업주 임성기 회장 비서실에서 일했다. 2014년 면역항암제 개발사 큐어세라퓨틱스를 설립하기도 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이사회와 감사위원회가 송영숙 회장 측 비리 의혹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회사 측은 반박했다. “송 회장은 대표이사 재직 당시와 사임 이후 경영관리 목적에 따라 예산을 적정하게 사용했다”며 “기사에 활용된 데이터는 사후 비용 환입이나 결제 취소 여부가 반영되지 않은 불완전한 자료”라고 밝혔다. 회사 측은 “과거에 함몰돼 회사의 미래를 막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전문경영인 체제를 중심으로 미래로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김태호 전 대표는 회사가 근거를 충분히 제시하지 않은 채 의혹을 덮는 데만 급급하다며 재차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는 매경이코노미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어떤 규정에 의해 정상 집행됐다고 한다면, 그 규정을 제시해야 한다. 이사회 승인도 없고 복리후생 규정도 없이 그냥 창업주에 대한 예우라고 하면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구체적인 규정이나 이사회 의결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회사 측 주장은 불완전한 해명이라는 얘기다.
김 전 대표는 또한 “이사회와 감사위원회가 독립적인 조사에 나서지 않는다면 대표이사를 업무상 배임으로 고발하고, 이사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액주주 자격으로 주주대표소송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송영숙 회장이 적자를 기록 중인 한미약품 비상장 계열사에서도 연간 수억원대 급여를 수령하고 있다”는 새로운 의혹도 제기했다. 경영권 분쟁이 격화된 시점에 문제를 제기한 배경에 대해선 “전직 직원이자 소액주주로서 회사의 준법경영과 거버넌스 개선을 위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며, 대주주 간 경영권 분쟁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법원으로 넘어간 공
임 부회장 지분 매각 여부도 관건
양측이 법정 공방을 벌이는 만큼 이제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관전 포인트는 두 가지다.
첫째, 100억원 규모 주식 가압류가 인용된 임주현 부회장의 본안 재판 결과다. 신 회장 측 주장대로, 에쿼티퍼스트에 넘어간 주식 6.6% 중 일부가 이미 시장에 매각된 것이 확인될 경우, 모녀 측의 의결권 있는 실제 지분은 최저 34.4% 수준에 그친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신 회장은 지난 7월 임종윤 코리그룹 회장 측 지분 5.27%를 1727억원에 추가 매입, 지분을 35.1%까지 늘린 상태다. 에쿼티퍼스트가 환매조건부로 양수받은 지분을 과연 시장에 얼마나 매각했는지에 따라 경영권의 향배가 좌우될 수 있다.
둘째, 반포 시니어케어 투자 관련 소송 결과다. 앞서 모녀 측이 “신 회장의 투자 합의 번복은 ‘의결권 전부를 공동 행사하기로 약속한 4자 협약 위반’ ”이라며 제기한 위약벌 소송의 1심 선고가 오는 10월 1일로 예정돼 있다. 신 회장 측은 1차 이사회 회의록에 시니어케어 투자에 대한 ‘조건부 승인’이 명시돼 있다며 반박하고 있다. 4자 협약의 성격과 책임을 둘러싼 두 소송의 판결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경영권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을 전망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전문경영인인 황상연 대표 체제가 들어선 지 4달이 넘었지만 아직 투명경영은 이뤄지지 않는 듯하다”며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비즈니스 본업에 매진해야 한미약품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승욱 기자 noh.seungwook2@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73호(2026.08.19~08.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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