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시장에서 40년간 독주해온 배스킨라빈스에 신흥 강자들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화갤러리아 자회사 베러스쿱크리머리가 운영하는 ‘벤슨’과 투썸플레이스가 선보인 미국 브랜드 ‘밴루엔’이 대표적이다. 국산 원유 직매입부터 프렌치 스타일 기법까지, 각자의 무기를 앞세운 신흥 강자들이 배스킨라빈스의 아성을 흔들지 주목된다.
2조원대 아이스크림 시장 회복세
유지방 40년 독주 배라, 3년 내리 적자
시장조사 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올해 국내 소매 아이스크림 시장 규모는 2조1461억원(추정치)으로, 지난해(2조1139억원) 대비 1.5% 성장할 전망이다. 2015년 사상 최고치인 2조1291억원을 기록한 이후 꾸준히 내리막을 걷다 2019년 1조7395억원까지 떨어졌던 시장이 10년 만에 정점을 회복할 것으로 관측된다. 저가 소매 채널의 성장과 함께 프리미엄 스쿱숍(아이스크림을 둥근 국자(scoop)로 떠서 콘이나 컵에 담아 파는 전문점)의 성장세도 기대를 모은다.
이 시장의 절대 강자는 배스킨라빈스다. 1986년 서울 명동에 1호점을 열어 국내 프리미엄 스쿱숍 시장을 개척했다. 2026년 6월 말 기준 직영 35점·가맹 1706점으로 전국 1741개 매장을 거느리며 압도적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실적을 들여다보면 최근 분위기가 좋지 않다. 배스킨라빈스를 운영하는 비알코리아의 매출은 2022년 사상 최대인 7917억원을 기록한 뒤 2023년 7065억원으로 꺾였고, 같은 해 창사 이래 첫 영업손실(290억원)을 냈다. 배스킨라빈스사업부 매출이 2022년 5859억원에서 2023년 4967억원으로 15.2% 급감한 영향이다. 2023년 탕후루 열풍이 주요 고객층인 1020세대의 발길을 돌린 점, 소비 심리 위축, 우유·코코아 등 원자재 가격 급등이 수익성을 동시에 압박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비알코리아는 2024년 –99억원, 지난해 –57억원 등 적자폭은 감소세지만 3년 연속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한화갤러리아 3세 김동선의 도전
고(高)유지방·국산 원유로 정면 승부
전통의 강자가 흔들리는 사이 신흥 브랜드들이 빈틈을 노리고 있다.
시장 공백을 파고든 첫 번째 도전자는 한화갤러리아다. 자회사 베러스쿱크리머리를 통해 지난해 5월 서울 압구정로데오에 1호점을 열며 진입했다.
벤슨의 핵심 차별화는 제조 공급망에 있다. 탈지분유 대신 경기도 포천의 자체 생산센터에서 국산 원유를 직접 매입해 살균·숙성한 뒤 한화로보틱스 협동로봇으로 전량 자체 생산한다. OEM은 없다. 유지방 함량은 최고 17%로 시중 프리미엄 제품(10% 초중반)보다 높고, 오버런(공기 함입량)은 약 40%로 낮췄다. 오버런이 낮을수록 공기가 덜 들어가 밀도감과 풍미가 짙어진다. 설탕 대신 100% 아카시아 꿀·메이플 시럽을 감미료로 쓰고, 바닐라빈·체리 등 주요 토핑도 원물만 사용한다. 인공 유화제와 인공 첨가물은 배제했다.
윤진호 베러스쿱크리머리 대표는 벤슨 론칭 1주년을 맞은 지난 5월 경기 포천 생산센터에서 미디어 간담회를 열고 ‘아이스크림 계급도’를 언급했다. “아이스크림은 우유·유크림의 종류와 인공 첨가물 사용 여부에 따라 ‘티어(Tier) 1~4’로 나뉘는데, 국내 시장은 티어 3에 맞춰져 있고 이는 30~40년 전에 미국에서 유행했던 수준”이라며 “국내 아이스크림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밝혔다. 가격대는 배스킨라빈스 싱글레귤러(120g, 3900원)보다 높고 하겐다즈(한 스쿱 6900원)와 유사한 수준으로 포지셔닝했다. 현재 21개인 매장 수는 연내 30개, 2027년까지 100개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투썸플레이스 ‘밴루엔’ 출시
비건·프렌치 스타일로 강남 공략
최근에는 커피 프랜차이즈 강자 투썸플레이스도 가세했다. 미국 브랜드 ‘밴루엔(Van Leeuwen)’과 마스터 프랜차이즈 계약(MFA)을 체결하고 지난 7월 서울 강남역 인근에 1호점을 오픈했다.
2008년 뉴욕 브루클린의 아이스크림 트럭 한 대에서 시작한 밴루엔은 현재 미국 100개 이상의 직영점을 운영하며 1만개 이상의 유통채널에서 판매된다. 에드 시런, 사브리나 카펜터 등 글로벌 셀럽이 애호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일본이나 싱가포르보다 한국을 아시아 첫 진출국으로 선택한 배경에는 새 브랜드와 식문화를 빠르게 수용하는 국내 소비 시장의 역동성이 있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밴루엔은 ‘프렌치 스타일’을 강점으로 내세운다. 일반 아이스크림보다 달걀 노른자 함량을 두 배 이상 높여 인공 안정제 없이도 진한 풍미와 묵직한 질감을 구현했다는 설명이다. 인공 색소와 인공 첨가물도 사용하지 않는다.
벤슨과 구별되는 강점은 비건 라인업이다. 오트·코코넛·캐슈넛 베이스의 비(非)유제품 아이스크림을 운영해 채식 소비자까지 아우른다. 미국식 선데이(sundae)와 밀크셰이크도 함께 판매하며 ‘뉴욕 스쿱숍 경험’ 자체를 이식한다는 전략이다. 투썸플레이스는 강남역점 오픈을 시작으로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스위트파크·신논현역 인근에 잇따라 매장을 열 계획이다.
3대 관전 포인트는
수익성 검증·3세 경영·시장 재정의
업계에서 주목하는 관전 포인트는 세 가지다.
첫째, 3사 모두 수익성을 입증해야 한다. 밴루엔은 강남 상권을 중심으로 3호점을 오픈한 지 한 달여밖에 안 됐다. 벤슨을 운영하는 베러스쿱크리머리는 지난해 매출 43억원, 영업손실은 그보다 두 배 이상 많은 95억원을 기록했다. 회사 측은 50~100호점 규모에서 손익분기점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배스킨라빈스 역시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110% 증가했지만, 연간 흑자전환 달성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
수익화는 프랜차이즈 방식을 통해 추진할 전망이다. 밴루엔과 벤슨은 “아직 가맹 사업 계획이 없다”고 밝히지만, 양 사 모두 사업 목적에 가맹 사업을 명시하고 있다. 직영점 성과가 확인되면 가맹 사업도 가시화될 전망이다.
둘째, 재벌 3세들과 사모펀드의 경영 능력 입증이다. 벤슨은 한화그룹 3남인 김동선 한화머시너리앤서비스홀딩스(M&S) 미래전략총괄 사장이 제품 개발과 브랜드 론칭 전반을 직접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다. 배스킨라빈스는 상미당홀딩스(옛 SPC) 3세인 허희수 비알코리아 최고비전책임자가 진두지휘하고 있다. 밴루엔은 사모펀드 칼라일그룹이 운영하는 투썸플레이스가 글로벌 멀티브랜드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시금석으로 평가된다.
셋째, 국내 프리미엄 스쿱숍 시장의 기준 재정의다. 그간 이 시장을 독점해온 배스킨라빈스도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할 만큼 현재 업계 표준이 흔들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유지방 함량을 높여 ‘슈퍼 프리미엄’을 표방하는 벤슨과, 비건 라인업과 프렌치 스타일을 내세운 밴루엔의 전략이 업계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노승욱 기자 noh.seungwook2@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73호(2026.08.19~08.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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