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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이 로마를 멸망시키지 못한 이유 [한순구의 ‘게임이론으로 보는 경영’]

(48) 정치인 카이사르 vs 군인 한니발

  • 입력 : 2026.08.14 15:38:51  
(48) 정치인 카이사르 vs 군인 한니발
절망적인 이중 포위를 뚫고 알레시아 공방전을 승리로 이끈 카이사르에게 항복하는 베르킨게토릭스. (1899년, 리오넬 로이어)
절망적인 이중 포위를 뚫고 알레시아 공방전을 승리로 이끈 카이사르에게 항복하는 베르킨게토릭스. (1899년, 리오넬 로이어)

로마인에게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명장이 누구인지 묻자 로마의 적인 카르타고의 장수 한니발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만큼 한니발은 뛰어난 장수였다.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은 기원전 218년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에 진입한 뒤 기원전 203년 카르타고로 귀환할 때까지 약 15년간 이탈리아 반도에서 로마와 싸웠다.

당시 이미 카르타고는 로마에 패배해 지중해의 지배권을 상당히 상실한 상태였지만, 전투에 능한 한니발은 초기 2년간 로마군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둔다. 특히 기원전 216년 있었던 칸나에 전투에서는 8만6000명의 로마군이 참전해 7만명 이상이 전사를 했다. 로마로 무사히 돌아간 병사의 숫자가 1만명이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고 하니 참패도 이런 참패가 없었다. 당시 한니발 병사의 수는 5만명이었으니 2배에 가까운 서양 최강 로마군을 상대로 믿기 힘든 승리를 거뒀던 것이다. 한니발군의 전사자 숫자는 8000명 정도였다고 하니 로마군 전사자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칸나에 전투 승리 직후 한니발의 부하 장수 한 명이 바로 로마로 쳐들어가자고 제안했다. 병력의 80% 이상이 전사한 칸나에 전투 이후 로마인들이 공황 상태일 것이므로, 바로 이탈리아의 중심인 로마를 공격하면 쉽게 함락될 것이라는 논리였다. 당연히 로마가 함락되면 한니발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이탈리아 전체를 차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니발은 칸나에 승리 직후 로마를 공격하지 않았다. 그러자 한니발에게 로마를 공격하라고 조언했던 부하 장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한니발이여, 당신은 승리하는 법은 알지만 승리를 이용하는 법은 모릅니다.”

결국 한니발은 15년간 이탈리아에 머물며 로마를 멸망시키지 못하고 고향인 카르타고로 돌아왔다. 복수에 불타는 로마군이 카르타고를 공격해 멸망시켰으니, 칸나에 승리 직후 로마를 공격하자고 한 부하 장수의 조언이 맞았는지 모른다.

한니발이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전쟁에서 패배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를 공격했다는 것 자체가 극도로 무리한 행동이었다.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반도로 들어갔을 때 한니발의 병사 수는 2만6000명 정도로 기록돼 있다. 서양 최강 로마군과 이탈리아 반도 내 동맹군의 병력이 최소 수십만명에 이르는 상황에서 2만6000명의 병사로 정복을 시도했다는 것 자체가 지나치게 무모한 일이었다. 또 당시 카르타고는 이탈리아 남쪽 아프리카에 위치한 나라였다. 그런데, 한니발이 로마를 공격할 때 남쪽이 아닌 북쪽의 알프스를 넘었다는 사실에서도 그의 무리수를 알 수 있다. 카르타고에서 이탈리아 남부가 아무리 거리상 가까워도, 당시 해군력의 측면에서 로마가 절대 우위였기에 배를 타고 상륙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한니발은 해군이 필요 없는 육로로 이탈리아에 들어가려고 빙 돌아 북쪽 알프스 산맥을 넘었다. 이는 해군력 없이 험준한 산을 넘어 적진에 뛰어든 한니발에게 고국 카르타고가 식량과 추가 병력을 지원해줄 수 없다는 의미였다.

즉 한니발의 이탈리아 공격은 시도 자체가 무리였고 99%의 확률로 패배할 것이 뻔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한니발이 워낙 뛰어난 장군이었기에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도 2년간 소수의 군대로 몇 배의 병력을 가진 로마군과 싸워 연전연승을 거뒀던 것이다.

사실 부하 장수의 조언을 거절하고 칸나에 전투 승리 직후 로마로 진격하지 않은 한니발의 판단이 잘못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칸나에 전투처럼 처참한 패배를 당한 적은 대부분 항복을 결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아마 한니발 장군도 더 이상 부하들을 희생시키는 전투를 치르지 않고도 항복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로마는 이런 한니발의 예상을 깨고 계속 한니발과 전투를 이어갔다. 그리고 한니발에 대응하는 전략도 변경했는데, 성 밖으로 나오지 않고 모든 도시들이 성안에서 한니발과 싸우는 방식으로 바꿨다. 처음 2년간은 소수의 한니발군을 얕잡아 보고 로마군이 넓은 평야에서 전투를 벌였고 번번이 패배했는데, 한니발의 무서움을 알게 된 후에는 성을 지키고 밖으로 나가지 않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그래서 우왕좌왕 여러 성들을 공격하다가 한니발은 13년을 허비하고 이탈리아에서 철수하게 된다.

물론 칸나에 전투 이후 바로 성으로 둘러싸인 로마를 공격해 한니발이 로마를 함락시킬 확률은 매우 작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하지만 그런 전문가들의 입장에서 보면, 칸나에 전투에서 한니발이 승리할 확률 역시 매우 작은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지금의 프랑스 땅인 갈리아를 정복한 로마의 카이사르는 한니발보다 뛰어난 점이 있다. 대부분의 군사 전문가들은 한니발이 카이사르보다 뛰어난 군사 지휘관이라고 평가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서 로마를 공격하지 않은 한니발에 비해 알레시아(Alesia) 공방전이라는 전투를 벌이고 승리한 카이사르가 전략적으로 뛰어난 면이 있다.

한니발이 소수의 군대로 이탈리아를 정복하려고 했듯, 카이사르도 소수의 군대로 넓은 갈리아를 정복하려고 시도 중이었다. 그런 갈리아 정복 전투를 7년이나 치르던 차에 갈리아의 위대한 지도자 베르킨게토릭스(Vercingetorix)가 알레시아라는 성에 8만명 정도 병력으로 진을 치고 있었다. 당시 카이사르가 이끌던 로마군은 5만~7만명 정도였는데, 카이사르는 적은 병력을 이끌고 알레시아성을 포위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일어났다. 갈리아 전 국토의 다른 군사들이 알레시아성의 베르킨게토릭스를 구하러 달려왔다. 이렇게 달려온 갈리아의 병력이 20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로마군이 포위 상태에서 안과 밖의 양쪽의 갈리아군과 싸웠던 것이다. 그런데 누가 보더라도 불리한 이 전투에서 카이사르군이 승리했다.

사실 한니발은 이탈리아로 쳐들어간 뒤 2년간 눈부신 승리를 연이어 거뒀다. 한니발이 승리한 이유 중 하나는 항상 자신에게 유리한 지형으로 로마군을 끌어들여 승리하는 방식이었다.

적은 숫자의 한니발 군대를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최강 로마군은 한니발이 어디에 있든 쫓아가 전투를 벌였다. 하지만 칸나에 전투에서마저 7만명의 전사자가 발생하자, 이제 한니발은 더 이상 자신에게 유리한 지형으로 로마군을 끌어들일 수 없었다. 7년째 갈리아 정복을 하고 있던 카이사르도 한니발과 비슷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더 이상 갈리아군을 카이사르에게 유리한 지형으로 끌어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두 사람의 행동은 완전히 반대였다.

사실 알레시아 공방전에서 앞뒤로 포위돼 몇 배가 되는 적군을 막는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전략이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그 도박과 같은 전투를 기꺼이 시작했다. 반대로 한니발은 더 이상 자신에게 유리한 지형으로 로마군을 끌어들일 수 없고, 이제 로마군과 싸우려면 한니발에게 불리한 로마 성벽을 공격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이를 외면했다.

군사 전략가의 측면에서는 한니발의 선택이 맞았다. 일부러 자신의 소중한 군대를 사지(死地)로 끌고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계산하기 시작하면 불과 수만명의 군사로 지금의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정복하려는 시도 자체가 군사적으로 무모한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정복에 성공하려면 적에게 유리한 지형으로 일부러 들어가서 깜짝 놀랄 승리를 거둘 수 있는 배포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 담대함이 정치인이었던 카이사르에게는 있었지만 군인이었던 한니발에게는 없었던 듯하다.

사진설명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73호(2026.08.19~08.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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