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반 암 연구를 표현한 이미지. 개인맞춤형 암백신은 환자의 암 유전자 변이를 분석해 면역세포가 공격할 신생항원을 선별하고 환자별 백신을 설계하는 방식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개인마다 다른 암의 유전자 변이를 분석해 환자 한 사람에게 맞는 치료용 백신을 만드는 ‘개인맞춤형 암백신’ 개발이 속도를 내고 있다. 환자의 종양에서 암세포에만 나타나는 표적을 찾아내고 이를 면역세포가 공격하도록 훈련하는 방식이다.
최근에는 유전체 분석과 인공지능(AI) 기술이 결합하면서 수많은 암 돌연변이 가운데 실제 면역반응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표적을 골라내는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다만 아직 임상시험 단계인 치료법이 많아 기존 항암치료를 대체할 기술로 보기보다는 면역항암제 등의 효과를 높일 새로운 치료 전략으로 연구되고 있다.
개인맞춤형 암백신 분야에서 가장 임상 개발이 앞선 사례 가운데 하나는 미국 모더나와 머크가 공동 개발 중인 ‘인티스메란 오토진’이다.
두 회사가 진행한 KEYNOTE-942 임상 2b상 5년 추적 결과에 따르면 수술을 받은 고위험 3B~4기 피부 흑색종 환자에게 인티스메란과 면역항암제 펨브롤리주맙(제품명 키트루다)을 함께 투여했을 때 재발 또는 사망 위험이 펨브롤리주맙 단독 투여군보다 49% 낮게 나타났다. 원격 전이 또는 사망 위험도 약 59% 낮았다.
연구 결과는 올해 6월 국제학술지 ‘Journal of Clinical Oncology’에 발표됐다. 다만 전체 임상 참여자는 157명이고 5년 분석은 기술적 분석으로 진행됐다. 현재 더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한 3상 임상이 진행되고 있어 개인맞춤형 암백신의 실제 치료 효과와 적용 범위는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 환자의 암에서만 나타나는 ‘신생항원’을 찾는다
개인맞춤형 암백신의 핵심은 환자의 암세포에만 존재하는 표적을 찾는 데 있다.
암세포는 증식 과정에서 여러 유전자 변이를 축적한다. 일부 변이는 정상세포에는 없는 새로운 단백질을 만들어내는데 이를 ‘신생항원(neoantigen)’이라고 한다. 정상세포에는 없고 암세포에서 나타나는 만큼 면역체계가 암세포를 구별해 공격할 수 있는 표적 후보가 된다.
개인맞춤형 암백신을 만들려면 먼저 환자의 종양 조직과 정상 조직을 분석해 암세포에서 발생한 유전자 변이를 찾아낸다. 문제는 한 환자의 종양에서도 많은 변이가 발견될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변이가 면역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실제 백신에 사용할 신생항원을 선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활용되는 것이 AI와 각종 계산생물학 기술이다. 환자의 유전체와 종양 정보를 토대로 여러 후보 가운데 면역반응을 유도할 가능성이 높은 신생항원을 예측하고 우선순위를 정한다. 최근 개인맞춤형 암백신 개발에서 AI 기반 신생항원 예측 기술이 중요해진 이유다.
선별된 신생항원 정보를 mRNA나 펩타이드 등의 형태로 만들어 환자에게 투여하면 면역체계가 해당 항원을 학습하고 같은 표적을 가진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유도한다.
● 면역항암제와 함께 쓰는 이유는
현재 개발 중인 개인맞춤형 암백신 상당수는 면역항암제와 병용하는 방식으로 연구되고 있다.
면역항암제 가운데 면역관문억제제는 암세포가 면역세포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억제 신호를 차단해 면역세포가 다시 암을 공격하도록 돕는다. 하지만 모든 환자에게 같은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개인맞춤형 암백신은 면역체계에 암세포의 표적을 제시해 특정 암세포에 대한 면역반응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면역항암제와 역할이 다르다. 한쪽이 면역반응을 억누르는 장치를 풀어준다면 다른 한쪽은 어떤 암세포를 공격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방식에 가깝다.
이 때문에 두 치료법을 결합해 항암 면역반응을 높이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모더나·머크 외에도 글로벌 바이오기업들이 다양한 방식의 개인맞춤형 암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최근 연구들은 차세대 염기서열 분석과 신생항원 예측 알고리즘, mRNA 등 백신 전달 기술의 발전이 개인맞춤형 암백신의 임상 개발을 가능하게 한 주요 배경으로 보고 있다.
다만 암백신이 면역반응을 유도한다고 해서 반드시 환자의 생존기간 연장이나 재발 억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신생항원을 선택하느냐와 종양 주변의 면역환경, 백신 제조 기간 등 여러 요인이 치료 효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
● 국내 연구진은 B세포 반응까지 분석
국내에서도 개인맞춤형 암백신 관련 연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AI 기반 신생항원 예측 플랫폼을 개발하거나 유전체 분석·암백신 기술을 연구하는 테라젠바이오, 신테카바이오, 애스톤사이언스 등이 대표적이다. 에스티팜 등 mRNA 백신 생산 기술과 인프라를 보유한 기업들도 관련 기술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연구기관과 기업이 공동으로 신생항원 예측 기술을 개발하는 사례도 있다. 최정균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네오젠로직,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등의 연구진과 함께 기존 T세포 중심의 신생항원 연구에서 범위를 넓혀 B세포 면역반응을 함께 분석한 연구 결과를 지난해 12월 국제학술지 ‘Science Advances’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43만7000개 이상의 펩타이드와 3억7000만개 이상의 B세포 수용체(BCR) 클론 데이터를 이용해 B세포가 반응할 가능성이 있는 항원을 예측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또 생쥐 암 모델 실험과 암 유전체 데이터, 면역관문억제제 치료 환자 데이터 등을 분석한 결과 B세포가 반응하는 신생항원이 항암 면역반응과 관련될 가능성을 확인했다. 기존 T세포 반응뿐 아니라 B세포 반응까지 함께 고려하는 것이 신생항원 예측을 개선할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논문의 교신저자인 최 교수는 KAIST와 네오젠로직, SCL-KAIST 중개의학연구소에 소속돼 있다. 연구에는 네오젠로직 연구진도 참여했다.
다만 이 연구 역시 새로운 신생항원 예측 방법의 가능성을 제시한 단계다. 실제 환자를 위한 개인맞춤형 암백신으로 개발하려면 후보물질 개발과 전임상, 임상시험 등을 거쳐 안전성과 치료 효과를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 환자별 제작 시간·비용도 넘어야 할 과제
개인맞춤형 암백신이 실제 의료 현장에서 폭넓게 사용되기까지 해결해야 할 문제도 적지 않다. 환자별 백신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과 비용이 현재 가장 큰 장벽으로 꼽힌다.
일반 의약품은 같은 제품을 대량 생산할 수 있지만 개인맞춤형 암백신은 환자의 종양 조직을 채취해 유전자 변이를 분석하고 표적을 선정한 뒤 해당 환자에게 사용할 백신을 별도로 만들어야 한다. 현재 환자 조직 채취부터 백신 제작과 투여까지 약 6주가 소요되며,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검사와 생산 비용도 환자 한 명을 위해 개별적으로 들어간다. 제작 기간을 단축하고 비용을 낮추는 것이 상용화를 위한 주요 과제다.
신생항원 예측의 정확도 역시 치료 효과를 좌우할 수 있다. 수많은 유전자 변이 가운데 실제 강한 면역반응을 유도할 표적을 얼마나 정확하게 골라내느냐에 따라 백신의 효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AI는 이 과정에서 환자마다 다른 종양 데이터를 분석해 치료에 사용할 표적 후보를 찾는 데 활용된다.
향후 진행 중인 대규모 임상시험에서 치료 효과와 안전성이 확인되고, 환자별 백신의 제작 기간과 비용을 얼마나 낮출 수 있을지가 실제 암 치료 현장 진입을 가를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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