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언론에 알리지 않고 전용기를 갈아탄 일이 뒤늦게 드러났습니다. 워싱턴포스트가 처음 보도하고 뉴욕타임스가 뒤이어 확인한 내용입니다. 지난 7월 8일 터키 앙카라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에어포스원에 오른 직후 기내식 트럭이 비행기에 접근했고, 그는 곧이어 C-32A라는 군 수송기로 옮겨 탄 채 다음 행선지로 이동했습니다. 함께 순방에 나섰던 기자단과 백악관 참모 대부분은 대통령이 같은 비행기에 탄 줄로만 알고 움직였습니다.
2026년 7월 8일 터키 앙카라 국제공항에서 미국 대통령 전용기 옆으로 기내식 트럭이 붙어 있다. 비행기 아래로는 트럼프 대통령 일행을 안내하는 모터게이드가 보인다. 미국 언론은 트럼프가 기내식 트럭을 통해 비행기에서 내려 군 수송기로 환승했다고 뒤늦게 확인 보도했다. (AP Photo/Alex Brandon)
당시 언론인들은 창문 덮개를 내리라는 백악관 측 지시를 받았고, 한 달 뒤인 이번 주 월요일(현지시간) 관련 보도가 나오기 전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미국 언론의 반응은 백악관이 기자들을 동의 없이 ‘미끼(decoy)’로 이용했다는 것으로 모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처럼 이란이 대통령 전용기를 격추하려 했다면, 이 위장술이 함께 탄 사람들을 표적으로 만들었을 수 있다는 것이죠.
비슷한 상황은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2000년 3월 클린턴 대통령 시절에도 유사한 일이 있었는데, 당시 백악관은 USA투데이 소속으로 기자단 대표였던 수전 페이지(Susan Page) 기자에게 상황을 미리 알렸다고 이번에 워싱턴포스트가 전했습니다.
● 기자들은 어떻게 움직였나
주목할 만한 것은, 사건의 개요가 확인된 후 미국 기자들이 취한 행동입니다. 기사와 SNS로 대중에게 알리는 것 외에, 백악관기자단협회(White House Correspondents‘ Association) 회장이자 폭스뉴스 선임기자인 재키 하인리히(Jacqui Heinrich)가 트럼프 측 참모들과 만나 기자단의 우려를 전달했고, 그 요지를 회원들에게 메모로 보냈다고 CNN의 미디어 전문기자 브라이언 스텔터(Brian Stelter)가 8월 11일 보도했습니다.
하인리히 회장이 백악관에 요청한 것은 “work with us on a protocol for handling extraordinary security circumstances in the future”, 즉 비밀경호국의 위협 대응 책무는 인정하되 언론의 안전과 대통령에 대한 독립적 취재, 그리고 필요할 때 사후에 기록을 바로잡을 장치를 갖춘 규칙을 함께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근거로 그는 풀 리포트가 흔들리면 단일 사건을 넘어서는 위험이 있으며, 음모론이 넘치는 정보 환경에서 독립 보도의 신뢰성에 대한 의심이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1914년에 설립되어 100년이 넘는 미국 백악관 기자단의 역사에서도, 정작 이런 비상 상황을 다룰 취재 프로토콜이 마련돼 있지 않았다는 점이 사실 조금 놀라웠습니다.
● 한국 대통령이 통과하는 트랩 위의 ‘행사’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요. 사진과 관련해 조금 말씀드리자면, 미국의 백악관사진기자단(1921년 설립) 형식과 운영 규칙을 벤치마킹한 청와대사진기자단이 만들어진 것은 1983년 전두환 대통령 시절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정부가 촬영한 대통령 사진을 신문이 받아 쓰다가 이때부터 독립적인 사진 취재가 가능해졌습니다.
역사는 미국보다 짧지만 한국에도 대통령실에 기자단의 의견을 전달하는 통로는 갖춰져 있습니다. 기자단은 통상 춘추관장을 통해 의견을 조율하고그 단계에서 풀리지 않으면 대통령실 수석을 찾아갑니다. 물론 통로가 있다고 해서 언제나 원하는 방식으로 취재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3박 4일간 중국을 국빈 방문하는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4일 오전 성남 서울공항에서 공군 1호기에 올라 환송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2026.01.04 청와대제공
미국과 우리나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은 전용기에 오르내리는 방식이 우리와 달랐습니다. 시간과 장소는 특정되지만, 트랩을 통해 전용기 안 집무 공간으로 곧바로 올라가는 방식입니다. 반면 우리 대통령들은 출발과 도착을 ‘행사’ 형식으로 진행합니다.
가령 순방을 떠날 때면, 동행하는 수십 명의 기자단이 먼저 비행기에 올라 안전벨트를 매고 출발을 기다립니다. 이때 대통령이 환송 나온 정치인·관료들과 악수를 나눈 뒤 트랩을 오릅니다. 그러고는 트랩 아래에서 기다리던 카메라 기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그 장면을 네다섯 명의 카메라 기자가 풀(POOL)로 취재한 뒤 마지막으로 비행기에 오릅니다. 그제야 기체가 하늘로 떠오릅니다. 귀국할 때도 순번을 맡은 풀 기자들이 먼저 트랩 아래로 내려가 대기하면, 그때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출발과 도착이 이렇게 행사 형식으로 이뤄지니, 트럼프 대통령처럼 감쪽같이 몸을 숨겨 다른 비행기로 갈아타기란 쉽지 않습니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 숨기려는 권력, 지켜보려는 카메라
유리한 장면은 보이고 싶고 불리한 장면은 감추고 싶은 것은, 개인만이 아니라 권력자의 솔직한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공개와 비공개를 둘러싼 긴장은 언제나 언론과 권력 사이에 존재해 왔습니다. 2008년 가을 이명박 대통령 시절, 청와대가 사진기자들의 접근을 피하고 전속 사진가가 촬영한 사진으로 대통령 일정을 보도해 달라고 유도하자 기자단이 성명서와 기명 칼럼으로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 미국 언론이 요청한 ‘독립 보도’와도 맞닿는 맥락입니다.
미국에서도 2022년 조 바이든 대통령의 손녀가 백악관 정원에서 결혼식을 올렸을 때 언론 접근을 허용하지 않아 기자단이 항의했고, 2013년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는 백악관사진기자단과 38개 언론 단체가 백악관 대변인에게 항의 서한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백악관이 자체 촬영한 사진으로 대통령 홍보에 집중한다는 문제제기였습니다. 당시 오바마 전속 사진가가 촬영한 사진의 완성도는 높이 평가받았지만,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는 백악관이 직접 만든 이미지가 독립 취재를 대체하는 흐름에 대한 우려가 컸습니다. 독립적인 사진 저널리즘을 보도자료가 대체해서는 안 되며, 백악관의 시선이 아니라 독립적인 기자들의 눈으로 실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 우리에게도 있었던 ‘깜짝 환승’
‘대통령이 몰래 비행기를 갈아탄’ 사건은 우리 역사에도 있었습니다. 2004년 12월, 노무현 대통령은 프랑스 파리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던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이 비행기는 서울로 바로 가지 못한다”는 말로 이라크 방문을 깜짝 발표했습니다. 드골 공항을 출발한 지 30분이 지난 시간 대통령이 직접 기자들이 있는 이코노미석을 찾아 설명한 것이었습니다.
곧이어 쿠웨이트에서 공군 수송기로 갈아타고 아르빌에 파견된 자이툰 부대를 찾았습니다. 군 수송기로 환승했고 보안을 위해 동선을 감췄다는 점은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와 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12월 8일 오전(현지 시간) 이라크 아르빌에 주둔 중인 자이툰부대 도착 직후 부대원들의 박수와 환호에 답례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그러나 달랐던 것은 기자를 대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트럼프처럼 창문 덮개를 내리게 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직접 상황을 설명했고 일부 기자를 수송기에 태웠습니다.
결국 이번 사건 이후 미국 기자들이 요구한 투명성과 체계화는, 어쩌면 새로운 요구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매뉴얼과 프로토콜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지키려 하지 않는 권력과 그 앞에서 입지가 점점 좁아지는 언론의 처지를 반영한 것은 아닐까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