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여 년간 의료 현장에서 수많은 환자를 마주해온 김현아 교수는 “노화에서 기인하는 모든 문제를 질병으로 진단하고 치료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증명된 치료 방법도 없을뿐더러 그 효과가 미미한 수준에 그친다는 것. 김현아 교수에게 노화와 질병의 구분법, 신체화장애, 병원 선택 및 이용 방법 등에 대해 물었다.
김현아 교수는 서울대학교병원 내과에서 전문의·전임의 과정을 수료했다. 관절염 분야에서 여러 논문을 발표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한의학회 분쉬의학상, 일본류마티스학회 젊은의학자상 등 다수의 국내·국제 학회에서 수상했다. 대한류마티스학회 보험이사, 대한내과학회 정책단 업무를 수행하면서 의료 정책에 관한 논문도 다수 출판했다. 2021년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된 ‘죽음을 배우는 시간’과 ‘딸이 조용히 무너져 있었다’ ‘가짜 환자’ 등을 출간했다.
“병원이 모든 병을 치료해주진 않습니다”
신체 이상 증상을 호소하지만 의학적으론 이상 없는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뭔가요.의학계에선 이를 ‘신체화장애’라고 불러요. 통증, 소화불량, 호흡곤란 등으로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지만 의학적으론 아무런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를 뜻하죠.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건 우울과 수면 장애가 뇌의 신호를 변질시켰기 때문이에요. 뇌는 신체를 관장합니다. 뇌의 신호 체계에 문제가 생기면 장기도 제 역할을 못 하는 거죠. 또 과도한 스트레스로 대뇌에 통증을 눌러주는 신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 온몸이 아프게 돼요. 대표적으로 장 질환을 꼽을 수 있어요. 신체적으론 아무 이상이 없는데 음식물을 섭취하면 배가 아프고 화장실을 찾게 되죠. 여기에 운동 부족, 불규칙한 식습관 등이 겹치면 대사증후군과 같은 신체 질환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통증, 소화불량, 호흡곤란 등 신체 이상 증상을 느끼지만 의학적으론 아무런 문제점을 발견하는 못하는 경우를 ‘신체화장애’라 부른다.
특별히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요. 진통제도 소용이 없거든요. 진통제는 염증 완화를 위해 개발됐어요. 염증과 무관한 신체화장애의 통증을 감소시키는 데는 큰 효과가 없습니다. 저를 찾아온 환자 중 다른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고 통증이 나아졌다는 분이 있었어요. 약을 살펴보니 마약성 진통제더라고요. 마약성 진통제는 정말 위험한 약입니다. 건강한 사람도 복용하는 그날로 중독되거든요. 특히 신체화장애 같은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환자들은 중독의 위험성이 더 높고요.
신체화장애를 의학적으로 치료할 순 없는 건가요.
저는 일단 환자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해요. 통증을 느끼는 원인과 검사 결과가 정상인 이유 등을요. “병원에서는 못 고친다”는 말도 하고요. 환자들에게 의학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순 없는 거죠. 대신 “매주 1시간씩 누워 있는 시간을 줄여보라”고 조언해요. 짧게라도 산책을 하는 등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거든요. 그마저도 힘들면 방에서 나와 거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넓은 공간에서 움직임의 영역을 넓히고 가족들과 짧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활력을 얻어 우울증 등을 어느 정도는 잠재울 수 있거든요.
특정 부위가 아닌 온몸이 아픈 경우는 어떻게 하나요.
3개월 이상 몸에 광범위한 통증을 느끼면서 18개의 기준 부위 중 11개 이상에서 압통점이 나타나는 현상을 ‘섬유근통’이라고 해요. 쉽게 말하면 온몸이 아픈 거죠. 섬유근통은 최첨단 뇌 영상 검사로도 그 원인을 밝혀내지 못합니다. 섬유근통은 우울증, 불면증을 겪거나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에게 잘 생겨요.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3배 정도 많이 발병되고요. 저를 찾아온 섬유근통 환자 대부분은 경제적 어려움, 사별, 사회적 괴롭힘 등을 겪은 분들이었어요. 공통적으로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끼고 있었죠. 이런 경우는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해요. 환자와 짧게라도 대화를 하며 그들을 세상 밖으로 이끌어내야 합니다. 하다못해 말다툼이라도 하는 쪽이 낫고요.
건강염려증으로 병원을 찾는 이들도 많은 편인가요.
우리나라는 자신이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OECD 국가별 주관적 건강 수준을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성인 52.4%가 스스로 건강하다고 느낀다고 답했어요. OECD 국가 평균 67.6%에 훨씬 못 미치는 수치죠. 이 데이터가 발표된 뒤 우리나라에서는 큰 반향이 일어났어요. 많은 이들은 한국인 특유의 의사소통 방식 때문에 이러한 결과가 초래됐다고 이야기했죠. 한국인은 ‘나 건강해요’라는 긍정적인 표현 방식에 서툴다는 거죠. 문화에 따라 표현하는 방법이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
교수님은 한국인이 건강하지 않다고 느끼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과잉 진단’의 영향도 있다고 봐요. 전 단계 녹내장, 전 단계 갑상선기능저하증 등 ‘전 단계’를 붙이는 질병이 늘고 있어요. 이에 약물치료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음에도 처방이 이뤄지는 경우도 많고요. 미국도 2015년 갑상선암의 발생률이 1975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어요. 하지만 사망률, 다른 부분의 암 전이율은 거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역학자들은 이런 양상을 보이는 원인으로 과잉 진단을 꼽습니다. 치료하지 않아도 되는 환자들에게 각종 검사를 권하는 거죠. 그 결과로 스스로 환자가 되었다고 느끼는 분들도 많아요.

김현아 교수는 “신체적으로 이상은 없으나 음식물을 섭취하면 배가 아프거나 화장실을 찾게 되는 ‘장 질환’도 신체화장애의 현상”이라고 말했다.
“노화의 현상을 병으로 치부하지 마세요”
병이 없는 환자에게도 이상 소견이 나올 수 있나요.병을 진단하기 위해선 검사를 시행해요. 그 검사의 가치를 평가하려면 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를 놓치지 않는지(민감도), 환자가 아닌 사람을 환자로 만들진 않는지(특이도)를 판단해야 합니다. 민감도와 특이도는 역의 상관관계를 가져요. 환자를 많이 찾아낼수록 병이 없는 환자에게도 이상 소견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죠. 이에 환자가 아닌 사람을 환자로 둔갑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게 노화의 현상을 병으로 치부하는 거고요.
질병과 노화를 구분하는 기준이 있다면요.
노화의 기준은 자의적이고 사회적이에요. 현대 문명에 노출되지 않은 시절에는 백내장이 생겨도 ‘나이가 들면 안 보이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겨왔어요. 그러다 백내장 수술이 도입된 후 백내장을 질병으로 여기게 됐죠. 또한 현대 의료에서는 노화의 모든 과정을 치료해 마땅한 질병으로 접근하는 분위기예요. 노안과 같은 자연스러운 노화의 현상도 수술을 해야 하는 질병으로 둔갑시키죠. 저는 몸의 변화가 느껴졌을 때 무조건 병원을 찾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먼저 자신의 상태를 천천히 살펴본 뒤 질병인지, 노화의 현상인지를 파악해보라고 하죠. 신체의 변화와 이상이 노화의 현상이라면, 이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입니다.
병원 방문 시기 및 선택 방법도 궁금합니다.
증상 정도에 따라 나뉠 수 있어요. 제가 진료하는 관절염 분야를 기준으로 보면 40대 이후의 여성 대부분은 손이 아파요. 이에 건강 프로그램에서 자주 나오는 ‘류마티스 관절염’을 의심하며 병원을 찾죠. 류마티스 관절염은 일반 관절통과 통증의 강도부터 달라요.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아프거든요. 하지만 일상생활이 가능하고 통증이 참을 만하다면 노화를 의심하고 일단 경과를 지켜보는 것이 좋습니다. 반면 일상에 지장을 주는 통증이 한 달 이상 계속된다면 병원을 찾는 게 맞고요. 먼저 1차 의료기관인 동네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아보세요. 상급 병원 치료를 권유받았다면 그때 대학병원 등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이를 무시하고 대학병원을 먼저 찾으면 긴 대기 시간, 짧은 진료를 비롯해 의도치 않은 비용 부담까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병원을 슬기롭게 이용하는 방법에 대한 조언 부탁드립니다.
가장 중요한 건 과잉 검사로 바가지를 안 쓰고 치료받는 거예요. 몇 가지 팁을 드리자면, 먼저 아주 확실한 증상이 아니라면 시간을 갖고 의사의 진단을 기다려야 합니다. 건강에 문제가 생기면 다급하게 대학병원에 와서 빨리 진료를 해달라고 요청하는 분들이 있어요. 이에 의사들이 서둘러 진단을 하면 오진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환자 역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의사의 진단을 기다려야 합니다. 또한 자신과 가까운 곳에서 좋은 의사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해요. 가장 중요한 건 진료 시간이에요. 나에게 긴 시간을 할애해주는 의사를 찾는 거죠. 이것이야말로 환자가 믿을 수 있는 의사의 척도가 됩니다.
#질병체크법 #자연노화 #여성동아
사진 조영철 기자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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