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반대로 거창한 목적 따위 세우지 않고 현재를 즐기는데 집중하기도 합니다. 두 여행 모두 옳고 그른 것은 아닙니다. 다만 방식의 차이 또 부담과 책임의 유무 등도 있을 겁니다.
여책저책이 만난 저자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유성관 작가는 맥주 한 잔을 핑계로 전국 브루어리를 찾아다니며 여행지의 풍경과 사람을 기억합니다. 유 작가는 ‘무엇을 보았는가’보다 ‘어떤 마음으로, 누구와 함께 했는가’에 집중합니다. 또 계획에서 벗어나 우연히 만나는 풍경과 사람 속에서 여행의 진짜 의미를 찾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여행을 떠난 이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유성관 │ 일토
여행을 떠나기 전 목적지를 정할 때 바다가 보고 싶으면 바다로, 맛있는 것을 먹고 싶으면 맛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꼭 거창한 이유가 있어야 여행이 되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맥주 한 잔을 찾아 길을 나설 수도 있다. 그러다가 생각지도 못한 동네를 만나면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고, 오래 기억할 풍경 하나를 얻어 돌아와도 좋다. 그 자체가 여행이니 말이다.
유성관 작가의 ‘미지의 세계_로컬 × 브루어리 × 여행’은 바로 그런 여행을 담은 책이다. ‘여름 맥주 영화’에 이어 선보이는 두 번째 맥주 에세이인 이 책에서 저자는 전국의 브루어리와 브루펍을 찾아 떠난다. 경남 통영에서 시작해 전남 순천과 나주, 전북 전주, 충남 홍성, 강원 평창을 거쳐 부산, 경북 경주, 강원 강릉으로 이어지고 서울과 수도권, 인천까지 발걸음이 닿는다.
그런데 이 책을 단순히 ‘전국 맥줏집 안내서’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저자는 방문할 곳을 미리 공부하고 전문가처럼 맥주의 맛과 향을 분석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훈련되지 않은 애호가’라고 소개하며 지극히 주관적인 감각으로 맥주를 마신 순간을 기록한다. 무엇을 마셨는가보다 어디에서, 누구와, 어떤 기분으로 마셨는가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일까. 그가 말하는 맥주 한 잔에는 여행지의 풍경이 함께 따라온다. 순천만에서 수천 마리 흑두루미의 비상을 바라본 뒤 마신 스타우트는 단순한 흑맥주가 아니다. 커피 향이 도드라지는 맥주를 마시면서도 저자는 몇 시간 전 눈앞에서 날아오르던 흑두루미를 떠올린다. 맥주와 풍경이 어느 순간 하나의 기억으로 겹쳐진다. 맛을 평가하는 대신 여행의 감정을 기록하는 방식이다.
홍성의 작은 양조장에서는 더욱 특별한 풍경을 만난다. 정해진 시간에 동네 사람들이 모닥불 앞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사람들은 자유롭게 드나든다. 거창한 축제도, 유명 관광지도 아니다. 그저 동네 한구석에서 사람들이 맥주를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평범한 시간이다. 하지만 여행자는 바로 그런 장면에서 지역의 진짜 표정을 발견한다.
부산 기장의 한 비어펍에서는 주인장의 부산 사투리 한마디가 여행의 기억이 된다. “난 잘 모르겠다 싶으시면.” 맥주를 잘 몰라도 괜찮다는 친절한 안내였을 텐데, 저자는 이 말을 부산의 정서가 담긴 하나의 캐치프레이즈처럼 받아들인다. 맥주를 마시러 갔다가 결국 사람의 말투와 태도를 기억하고 돌아오는 것이다.
이 책의 매력은 여기서 나온다. 브루어리를 찾아 떠났지만 결국 발견하는 것은 맥주 너머의 세계다. 통영에서는 바다를 만나고, 순천에서는 흑두루미를 보고, 나주에서는 수도원의 분위기를 느낀다. 전주의 저녁노을과 평창의 산골, 경주의 고분과 강릉의 바다도 맥주와 함께 기억 속에 자리 잡는다.
그러다 보니 독자는 어느 순간 ‘맥주 여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대신 한 도시의 골목을 걷고, 작은 양조장의 문을 열고,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고, 그 지역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공기를 마시는 여행에 동행하게 된다.
물론 여행이 늘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브루어리를 찾아 헤매다 허탕을 치기도 하고, 길을 잘못 들기도 한다. 숙취에 시달리고 출근을 걱정하면서도 다시 맥주를 마신다. 운전을 해야 하는 날에는 술 대신 논알코올 맥주를 선택한다. 여행의 불편함과 소소한 실패까지 숨기지 않기에 이야기는 오히려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책 제목인 ‘미지의 세계’에도 이런 의미가 담겼다.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등장하는 ‘the undiscovered country’에서 제목의 모티브를 가져왔다. 아직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고, 그래서 더 궁금한 세계. 그것은 크래프트 맥주라는 문화일 수도 있고, 전국 곳곳에 숨어 있는 작은 브루어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더 넓게 보면 우리가 아직 만나보지 못한 장소와 사람, 그리고 여행 그 자체다.
책이 알려주는 여행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꼭 유명한 관광지를 찾아갈 필요도, 완벽한 일정을 짤 필요도 없다. 좋아하는 것 하나를 핑계 삼아 길을 나서면 된다. 맥주를 좋아한다면 브루어리를 찾아가면 되고, 커피가 좋다면 동네 카페를 찾아가도 좋다. 그렇게 걷다 보면 계획에 없던 풍경과 사람을 만나게 된다. 여행의 목적지는 지도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한 잔의 맥주가 여행의 출발점이 되고, 그 잔을 내려놓는 순간까지가 하나의 여행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