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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장수 빌었던 고양이 그림…그 미술관엔 식민지 역사가 [미술관의 엽서들]

정유정 기자
입력 : 
2026-08-15 22:06:48
조산의 ‘모란묘도’
조산의 ‘모란묘도(牡丹猫図)’(16세기) <네즈미술관>

풍성하게 피어난 모란 꽃가지 아래, 몸을 가만히 웅크린 고양이 한 마리가 자리하고 있다. 고양이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곳에는 나비 한 마리가 날개를 펼친 채 날아오른다. 일본 도쿄 네즈미술관이 소장한 16세기 무로마치시대 조산의 ‘모란묘도(牡丹猫図)’다. 이 작품은 네즈미술관 뮤지엄숍에서 엽서로도 판매된다.

고양이의 보송보송한 털과 몸을 웅크린 모습, 위를 올려다 보는 눈빛이 단숨에 시선을 끌어당긴다. 고양이의 시선 끝에는 모란 가지 아래 사뿐히 날아오른 나비가 있다. 모란꽃과 나비, 고양이가 만들어내는 구도가 화면에 팽팽한 긴장감을 더한다. 고양이가 나비를 바라보는 순간을 포착한 셈이다. 정지된 그림이지만 나비의 움직임과 이를 보는 고양이의 긴장이 함께 담겨 있다.

고양이의 털은 먹의 농담을 달리해 보송보송한 질감을 살렸다. 반면 모란의 잎과 줄기는 가는 선과 색채로 세밀하게 묘사했다. 넓게 남겨둔 여백 사이로 길게 뻗은 모란 가지와 섬세한 필선은 화면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이 작품은 당대 일본에 영향을 미친 중국 회화의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중국 송·원대의 수묵화와 화조화는 일본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단순히 대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먹의 농담과 여백, 절제된 필선을 이용하는 방식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이 그림 역시 대상 사이의 관계와 여백을 활용해 화면에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단순히 귀여운 동물의 한때를 포착한 것 같지만, 이 그림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한자를 사용하는 동아시아 전통 미술에서는 글자의 소리가 같은 점을 이용해 그림에 상징을 담아내곤 했다.

고양이를 뜻하는 한자 ‘묘(猫)’는 중국어에서 70세 노인을 뜻하는 ‘모(耄)‘와 음이 비슷하다. 나비를 뜻하는 ‘접(蝶)’은 80세 노인을 뜻하는 ‘질(耋)‘과 중국어 발음이 같다. 이를 활용해 고양이와 나비 도상은 각각 70세와 80세, 나아가 장수를 상징하게 됐다.

여기에 모란이 더해졌다. 모란은 예부터 부귀와 영화를 상징하는 꽃으로 여겨졌다. 고양이와 나비가 장수를, 모란이 부귀를 뜻하면서 ‘모란묘도’에는 부귀를 누리며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기를 바라는 축원의 의미가 담긴다.

변상벽의 ‘묘작도(참새와 고양이)’(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이 같은 그림은 중국에서 시작해 조선에서도 널리 그려졌다. 조선 후기에 고양이를 잘 그려 ‘변고양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변상벽의 ‘묘작도’는 고양이와 참새가 등장해 장수와 출세를 기원하는 그림으로 해석된다. 김홍도도 ‘황묘농접도‘에 고양이와 나비를 함께 그렸다. 시대와 지역은 달라도 그림에 담긴 바람은 비슷했다. 오래 살고 복을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김홍도의 ‘황묘농접도’ <간송미술문화재단>

다만 작품을 소장한 공간까지 시선을 넓히면 그림 속 길상과는 다른 역사의 흔적이 보인다. 사립 미술관인 네즈미술관은 고미술 중심의 소장품을 갖춘 곳이다. 일본 도부철도 사장을 지낸 사업가 네즈 가이치로가 평생 수집한 고미술품을 바탕으로 설립됐다. 네즈 가이치로는 일제의 조선 식민지 철도 사업에도 관여한 인물이다.

그는 1927년 설립된 남조선철도의 사장을 맡았다. 남조선철도는 여수와 광주, 순천 등 전남 일대 철도 건설과 운영을 담당하다 1936년 조선총독부의 관영 철도망에 편입돼 국유화됐다. 철도는 쌀과 목화 등의 물자를 수송하며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수탈을 확대하는 데 이용된 주요 시설이었다.

네즈 가이치로가 사업을 통해 축적한 자본은 이후 방대한 고미술품을 수집하는 데에 쓰였다. 오늘날 네즈미술관은 아름다운 정원과 국보급의 동아시아 미술을 소장해 이름난 곳이다. 그러나 그 소장품의 형성 과정까지 들여다보면 일본의 제국주의와 식민지 조선의 역사가 겹친다.

모란 아래 몸을 웅크린 고양이와 그 위를 날아오르는 나비. 한 폭의 그림에는 오래 살고 부귀를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지만, 그보다 복잡한 이야기도 숨어 있다. 아름다운 작품을 소장한 이의 이력까지 살펴볼 때, 그림 한 장은 미술을 넘어 어두운 역사까지 돌아보게 한다.

미술관에서의 기억은 종종 엽서 한 장으로 남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다시 펼쳐 보는 작은 그림 속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미술관의 엽서들]은 뮤지엄 숍에서 만나는 대표 명작 엽서를 따라 작품이 탄생한 배경과 화가의 삶, 시대적 맥락을 함께 들여다봅니다. 아래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격주마다 미술관의 명작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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