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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으로 호칭 바꿔 부른다고 수평문화? … 환상도, 냉소도 버려라 [정해주의 인사쟁이가 바라본 세상]

입력 : 
2026-06-17 16:13:09
정해주 밸러스 대표
대부분 민간기업의 현 직위명은 원래 직책 개념이었다. 한 부서의 수장인 부장(部長), 부장 다음으로 부서를 이끄는 차장(次長), 개별 과를 담당하는 과장(課長), 과장을 대신하는 대리(代理)는 모두 직책명이었다.

공공 부문에서는 지금도 이 개념이 유효한 경우가 많다. 팀제가 도입되며 팀장이 부서장을 대체하는 직책명으로 굳어졌고, 직위는 직책에서 분리됐다. 직책이 필요한 자리는 한정돼 있고 인원은 계속 늘어나면서, 기업들은 부장·차장 등의 직위를 승진 대상으로 삼게 됐다. 절반 이상이 부장 직함을 달고 있는 조직들도 간혹 있다.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고 위계를 줄이겠다는 명분으로 기존 직위·직급을 통합하고, 호칭을 '님'이나 '프로', '매니저' 등으로 바꾼 곳이 많다. 이 흐름을 바라보는 시선은 통합만 하면 기업문화가 자동으로 수평화될 것이라 믿는 낙관론과, 통합은 전혀 쓸모없다고 비웃는 회의론으로 나뉜다. 전자는 형식의 변화가 문화의 전이를 자동으로 만들어낸다는 착각에 빠져 있고, 후자는 시도 자체를 조롱함으로써 변화의 싹을 자른다. 환상도 냉소도 조직을 망친다는 점에서 둘은 닮아 있다.

'마이클' '소피아' 등으로 부르며 수평을 연기하지만, 결재판을 들고 문을 두드리거나, 회의실에 앉는 순간 보이지 않는 계급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호칭만 평평하게 다림질하는 것은 보여주기식 해결책에 가깝다. 조직의 의사결정 속도가 느린 진짜 이유는 비효율적인 프로세스와 책임을 회피하는 무능한 리더에게 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 직위·직급 통합은 근원적 처방이라기보다 위계적 관성에 제동을 거는 제한적 장치에 가깝다.



직위·직급 통합의 현실적 동인은 승진자를 가려내는 데 드는 보이지 않는 비용을 줄이거나, 인건비를 관리하려는 데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다만 잠재적 승진 기회에 대한 보전, 승진율에 대한 조정을 하지 않고 통합만 밀어붙이는 경우 부작용이 뒤따르기도 한다.

반대편에는 "뭐가 바뀌었느냐"며 비아냥거리는 시선이 있다. 후속 조치가 부재한 탓을 제도 자체의 결함으로 돌려버린다. 직책 중심 인사가 확대됨에도 '승진의 맛'이라는 명분으로 여전히 직위 승진이 동기 부여의 축이 돼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불만을 빌미로 이전 체계로 되돌아가 버리면, 조직 내에서 직위·직급 통합은 쓸모없는 일로 낙인찍혀 재시도 자체가 어려워진다.

직위·직급 통합은 그 자체로 모든 것을 완성하지는 않지만, 실질적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연차와 나이에 기댄 '하대'의 관성을 제도적으로 끊는 출발점이다. 직위·직급이 사라지면 최소한 그동안의 관성에 제동이 걸린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위 직위자의 내면에 생기는 불편함이다. "우리 회사도 트렌드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는 대내외 메시지 속에서 이제부터는 부하들을 막 대하면 안 되겠다는 자각 자체가 변화의 시작이다.

형식을 바꾸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호칭은 바뀌었는데 후속 조치가 없다면 모든 것은 어색한 언어 실험일 뿐이다. 타인에 대한 존중이라는 씨앗을 조직이라는 토양에 심는 일과, 그 씨앗이 꽃을 피우는 일은 다른 문제다. 환상도 냉소도 바람직하지 않다. 직위·직급 통합은 변화를 진지하게 시도하려는 이들에게만 제대로 된 의미를 가진다.

[정해주 밸러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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