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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매경포럼] 네덜란드병과 '삼전닉스 공화국'
- 입력 :
- 2026-05-11 17:26:25
- 수정 :
- 2026-05-11 20:36:01
두 회사의 주가가 곧 국운이 된 나라. 우리는 어느새 '삼전닉스 공화국'에 살고 있다. 빅테크의 인공지능(AI) 투자가 불러온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정점에서 '삼전닉스'가 올린 승전보는 그야말로 짜릿하다. 전 세계가 목마르게 찾는 핵심 전략자산을 국내 두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경제에는 분명 축복이다. 올해 1분기 양사가 벌어들인 영업이익만 95조원. 연간 양사의 영업이익 합계가 50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낙관론도 나온다. 이란 전쟁이라는 공포를 누르고 증시가 '꿈의 8000피'를 넘보게 된 원동력 역시 반도체다.
하지만 '기승전 반도체'로 요약되는 작금의 풍경을 바라보는 마음 한구석에는 서늘한 걱정이 자리 잡는다. 두 기업이 증시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40%를 넘어섰다. 1분기 깜짝 반등한 경제성장률(1.7%)에서 반도체 제조업의 기여도는 무려 55%에 달한다.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1분기 수출액(2199억달러) 역시 전년 대비 139%나 폭증한 반도체의 독주가 만든 결과물이다. 반도체의 압도적인 존재감을 확인할수록 역설적으로 한국 경제의 '단일 엔진' 의존증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슈퍼사이클의 불꽃이 사그라들면, 그 뒤에 남겨질 한국 경제의 자화상은 어떤 모습일까.
경제학에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이라는 개념이 있다. 1959년 북해 가스전 발견으로 횡재를 누린 네덜란드가 막대한 외화 유입으로 자국 통화 가치가 치솟자, 되레 제조업 경쟁력을 잃고 경제 침체에 빠진 현상이다. 풍요가 쇠락의 씨앗이 된 아이러니다.
핀란드의 '노키아 신드롬'도 다르지 않다. 한때 핀란드 국내총생산의 4%, 수출의 20%를 혼자 책임지던 노키아의 몰락은 핀란드 경제의 '잃어버린 10년'으로 이어졌다. 특정 산업이 국가와 동일시될 만큼 비대해졌을 때, 그 엔진이 멈추면 국가 전체가 휘청일 수 있다는 뼈아픈 교훈이다. 지금 삼전닉스가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당시 노키아 그 이상이다.
반도체라는 거대한 블랙홀이 인재와 자본을 빨아들이는 사이, 다른 미래 산업들은 조용히 말라 가고 있다. 성장축이었던 석유화학·철강 등은 글로벌 공급 과잉으로 고전 중이고, 2차전지 역시 캐즘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있다. 자율주행 모빌리티와 차세대 바이오는 규제와 투자 편중 속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착시 속에 'K자형 양극화'가 빠르게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삼전닉스가 잘나갈수록 나머지 산업의 상대적 빈곤은 더 깊어지는 구조다.
물론 반도체는 앞으로도 한국 경제의 핵심 버팀목이어야 한다. 문제는 호황에 취해 다른 엔진을 키우는 일을 게을리하는 것이다. 호황은 영원하지 않다. 내년 두 기업이 낼 법인세는 100조원 안팎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이미 이란 전쟁 대응 추경(26조원)을 반도체 초과 세수에 기대어 편성했다. 하지만 귀한 재원을 단기 경기 부양이나 소모성 지출에만 쓰는 것은 정책적 상상력 빈곤이다. AI 인프라스트럭처, 소형모듈원전(SMR), 우주항공 같은 '미래 엔진'을 점화할 마중물로 과감히 투입해야 한다.
반도체가 만든 달콤한 꿀단지에 안주하는 순간, 한국 경제는 네덜란드병의 함정에 빠진다. 지금이야말로 '삼전닉스 의존 경제'를 넘어 '포스트 반도체' 전략을 수립할 마지막 기회다.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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