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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아칼럼] 20년 전쟁에도 줄이지 못한 일회용컵

이은아 기자
입력 : 
2026-01-07 17:25:10
2019년 그린피스는 영국의 비닐봉지 줄이기 정책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친환경 쇼핑백이 비닐 사용량을 되레 늘리는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내용이다.

영국은 2015년 비닐봉지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일회용 비닐봉지 대신 여러 차례 사용이 가능한 쇼핑백을 유상으로 제공하도록 했다. '생명을 위한 쇼핑백(bags for life)'이라는 이름도 붙였다. 제도 도입 이후 일회용 비닐봉지 배포량은 크게 줄었다. 문제는 재사용 쇼핑백을 만드는 데 일회용 비닐봉지보다 3배 이상 많은 비닐 원료가 사용돼 비닐 쓰레기가 오히려 늘어났다는 점이다. 돈을 주고 산 튼튼한 비닐봉지이니 여러 차례 사용할 것이라는 정부 기대와는 달리 사람들은 재사용 쇼핑백을 일회용 쇼핑백처럼 사용했던 것이다. 깜박 잊고 재사용 봉지를 챙기지 못했거나, 우연히 들른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게 됐다면 쇼핑백 재구매 이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린피스는 "생명을 위한 쇼핑백이 일주일을 위한 쇼핑백이 됐다"고 꼬집으며, 재사용 쇼핑백을 4~11회 이상 사용하지 않으면 일회용 봉지보다 환경에 해롭다고 경고했다.

규제로 소비자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환경 관련 규제는 특히 그렇다. 우리 정부가 지난해 말 예고한 '컵 따로 가격제'가 걱정되는 것도 그래서다.

'컵 따로 가격제'는 음료 원가와 컵 원가를 구분해서 영수증에 표시하는 것이다. 영수증에 컵 가격이 따로 표시된다면, 컵을 사용하지 않는 소비자에 대한 가격 할인이 뒤따라야 한다. 텀블러를 들고 온 소비자에게 음료 가격만 내도록 하면 텀블러 사용이 늘어날 것이라는 정부 계산일 것이다.

하지만 텀블러 사용이 대세로 정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스타벅스는 지금도 텀블러를 들고 오면 400원을 할인해주지만, 텀블러를 쓰지 않는 사람이 훨씬 많다. 영수증에 표시될 컵 원가가 100~200원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소비자들은 오히려 할인액이 줄어들 것을 염려해야 하는 형편이다. 현재 텀블러 할인을 하지 않는 소규모 카페들은 텀블러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매출이 줄어드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전국카페사장협동조합이 점주 16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 77%가 "제도 시행 시 판매 가격을 올리겠다"고 답한 이유다.



문제는 또 있다. 텀블러는 제조 과정에서 일회용 컵보다 온실가스를 30배 이상 많이 배출하기 때문에 220번 이상 사용해야 친환경 효과가 있다(영국환경청 보고서). 텀블러를 서너 번 사용하고 만다면 오히려 환경에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2002년 일회용 컵 보증제가 도입된 후 일회용 컵과의 전쟁은 20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다. 그사이 일회용 컵 사용량은 계속 늘었다. 충남대 환경공학과 연구팀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커피전문점과 패스트푸드점에서 사용된 일회용 컵은 2007년 2억5200만개에서 2022년 58억개로 급증했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겠다는 규제 목적을 전혀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규제가 실패한 것은 규제의 필요성에만 집중할 뿐 국민의 수용성과 기대효과, 비용 등에 대해 제대로 따져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관성 없이 오락가락했던 것도 신뢰를 떨어뜨렸다.

정부는 2024년 일회용 컵 보증금제를 사실상 포기하면서 정책 수용성을 이유로 들었다. 국민이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정책을 시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지금 다시 '컵 따로 가격제'를 들고나왔다.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면 이번에도 정책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거듭되는 정책 실패는 정부에 대한 불신을 키울 뿐이다.

[이은아 논설위원]